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_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 안쪽에는 누군가 매직펜으로 써놓은 듯한 숫자가 있다. 언젠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멍하니 올라가다가 문득 눈에 들어왔는데 xxx2호라인이 있는 왼쪽 문에는 '2'가, xxx1호 라인이 있는 오른쪽 문에는 '1'이 작게 쓰여 있었다. 무심히 바라보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알게될 것을 굳이 왜 써놓았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떤 표식은 그게 필요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p.146)

이 소설을 읽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배달 중인 택배기사님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1층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나는 14층에서 탔는데 10층, 7층, 3층 버튼이 미리 눌러져 있었고 해당 층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내가 예상했던 대로) 기사님은 둘러보지도 않고 어느 층에서는 좌측으로, 다른 층에서는 우측으로 바로 택배상자를 현관 앞까지 슬라이딩시켰다. 기계처럼 순식간에 착착 진행되어 내가 열림버튼을 누르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배송트럭 쪽으로 종종걸음 하는 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회사 유니폼을 입고 있던 그 기사님은 정직원이라 배송완료 사진을 찍어둘 필요가 없었겠지? 가끔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사진과 함께 배송완료 메시지를 보내는 기사님은 플랫폼 어플을 기반으로 한 위탁 배송기사였을까?

​사람의 시선과 관심은 아는 만큼 가닿기 마련이다.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알지 못해서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아서 끝내 보지 못한 채 일생을 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이고, 나이가 들수록 그 사실을 매일 새삼스럽게 절감하며 사는 중이다.

_​'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매체가 차고 넘치는 요즘, 내 마음을 '또다시' 사로잡은 소설이 있다. 바로 [헬프 미 시스터]이다.

​'수경', '우재', '여숙', '천식', '준후', '지후'. 가족의 연으로 맺어진 이들은 좁아터진 집에서 함께 산다. 얼핏 보면 이들은 대책 없이 낙관적인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 약하고 착해빠진 사람들. 그들은 사람을 잘 믿어 속고 또 속는다. 사람을 좋아해 상처 받고 또 받는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하지만, 퍽퍽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과연 해뜰날이 오기는 할까 의문이다. 그러나 의문이 들지언정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사람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과 연대(連帶)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끝내 붙들고 기어코 살아내는 그들의 삶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생계를 내팽개칠 수 없으니까 이를 악물고 참을 수 밖에 없더라도'(p.21), "상처를 지닌 채 걸어가는"(p.256) 수 밖에 없더라도, "가난은 그대로인데 형태가 바뀔 뿐"(p.275)이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염치를 생각하고 서로를 안쓰럽게 여겨 보듬고 감싸안는다. 이런 그들이기에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모든 게 기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p.338)

​_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서수 작가의 소설에는 진중한(?) 사랑스러움이 있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운데 귀엽거나 발랄한 가벼운 느낌은 아니다. "현실을 외면한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선언처럼, 퍽퍽하고 묵직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작가 자신이 근본적으로 사람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견지한 사람이기에, 전달 가능한 '사랑스러움'인 것 같다. 독자로서 작가만의 '사랑스러움'이 믿음직스럽고 듬직하다.

​개인적으로 작년 내 최애 단편은 단연 <미조의 시대>였는데, 그 애정과 믿음을 품고 신작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