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치졸한 인간이라니.

[비 온 뒤], 윌리엄 트레버

_열흘 전쯤 친정엄마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빠가 먼저 확진되어 회복하자마자 엄마가 확진이 되었다. 엄마는 아빠와 비슷한 증상을 겪었는데 나는 솔직히 엄마가 더 걱정이 되었다. 특히 끼니 문제가 그랬다. 엄마가 확진되어 음식을 할 수 없으니 엄마, 아빠 모두의 삼시세끼가 문제가 된 것이다. 엄마가 격리하는 동안 나는 평소보다 두 배로 음식을 만들었다. 같은 반찬이 물릴 것을 우려해 평소보다 더 다양하게, 더 자주 만들어 친정에 갖다 드렸다. 엄마는 내가 준 찌개며 국, 찜 등으로 차린 식탁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고 역시 딸밖에 없다며 고마워했다. 다행이 큰 탈 없이 엄마는 회복했다. 격리가 끝난 며칠 후 엄마는 쭈꾸미가 제철이라 쭈구미 볶음을 했으니 저녁 먹으러 건너오라고 했다. 나는 남편, 딸아이와 함께 갔다. 식탁에는 쭈꾸미 볶음 외에 멸치볶음, 장조림, 콩자반 등 다른 밑반찬도 있었다.

다같이 먹고 있는데 엄마가 말했다. "이 밑반찬들은 OO(올케 이름)가 해준 건데 맛있어. 먹어봐. 걔가 차분해서 그런지 음식도 깔끔하게 잘하네." 알고보니 격리기간 동안 올케도 엄마한테 몇 가지 밑반찬을 해서 갖다준 모양이었다. "응, 맛있네. 멸치볶음은 엄마가 한 것 만큼 맛있어. OO가 고생했네." 나는 대답했다. 그쯤에서 마무리하면 좋았을 것을 엄마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다. OO가 음식을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다고, 걔는 차분하니 뭐든지 잘한다고. 그 자리에도 없는 올케 칭찬을 계속했다. 처음 한두 번은 맞장구를 쳐줬는데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 남편이랑 딸이 있는 이 자리에서는 내 칭찬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 딴에는 얼마나 신경써서 음식을 챙겼는데. 잠자코 듣고만 있으려 했는데 순간 울컥해 한소리를 하고 말았다. "엄마는 OO얘기를 몇번이나 하는 거야! 나는 엄마한테 반찬 안 갖다줬어? 아니, 한 번만 말해도 될 것을 몇 번이나 얘기하는 거야?" 당황한 엄마는 둘러댔다. "아니, 엄마는 OO가 음식 못하는 줄 알았거든. 너야 엄마 닮아서 음식 잘하는 거 잘 아니까 말 안한 거지."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고...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외숙모 질투하는 거야? 내가 엄마 닮아서 질투가 심한 거였어." 나는 벌게진 얼굴로 열한 살 아이에게 대꾸했다. "질투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한 번만 말하면 될 것을 자꾸 말하잖아."

아닌 게 아니라 이게 질투가 아니면 무엇인지. 사실 울컥해 엄마한테 한소리를 하는 도중에도 나는 속에서 자괴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라는 인간 참 치졸하구나, 이게 만으로도 마흔에 접어든 사람이 칠순 가까운 엄마한테 할 소리인가. 나이가 들어도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치졸한 -유치하고 너그럽지 못한데다 생각이 좁은- 나를 발견하는 건 정말이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_[비 온 뒤]는 이처럼 치졸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내 경우처럼 타고난 천성이 치졸한 인간, 인간에게 장난치길 좋아하는 짖궂은 운명에 의해 치졸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치졸해진 인간 등 다양하게 치졸한 인간상이 열두 편의 이야기에 녹아 있다. 윌리엄 트레버다운 방식으로 인간의 치졸한 심리와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기어이 그 밑바닥까지 드러나도록 그려냈다. 너무도 생생한 날것이라 똑바로 바라보기 껄끄러울 정도로. 그렇지만 곁눈질로라도 몰래 엿보고 싶은 펄떡거리는 치졸함이었다.


맹인 남자의 두 아내, 성소수자 아들을 둔 노부부, 재혼한 부부로 인해 남매가 된 아이들, 부모의 이혼으로 사랑을 믿지 못하는 여자, 먼저 과부가 된 언니와 뒤이어 과부가 된 여동생, 정신병을 앓는 아들을 둔 어머니, 가족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가문,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불임 여성 등.


평범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사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치졸했다. 대부분 나는 경험하지 않은, 앞으로도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럼에도 나 역시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음을 아는 사연이었지만 그들의 치졸함을 내 것인양 공감할 수 있었다. 문장마다, 행간마다 오래 서성였다. 뭔가에 사로잡힌 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몇 번이고 곱씹어야 했다. 어쩌면 작가는 독심술이 가능한 특수한 눈과 감각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_[밀회]에 이어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작품을 거의 들였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독심술을 백만 분의 일이라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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