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빛"처럼

[플레인송], 켄트 하루프

_'플레인(plain)'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플레인'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플레인'한 이야기. 어설프지만 이 책을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플레인(plain)'의 자리에 이 단어의 뜻인 '분명한, 숨김없는, 꾸밈없는,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담백한 등'을 넣어보면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놀랍도록 삶과 닮아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_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서술 방식이다. 이 장편소설은 상징이나 은유와 같은 수사적 기법이 거의 없는 대신 짧고 간결한 대사와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로만 이루어져 있다. 성실한 관찰자의 역할에 충실한 작가는 인물의 삶에 섣불리 개입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인물의 표정과 음성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사소한 장면과 배경까지 사진을 찍은 것처럼 치밀하게 보여줄 뿐이다. 앞서 언급한 어설픈 한줄 요약에서 '플레인한 이야기'라고 한 것도 이 이유에서다. 독자는 철저히 제시하기만 하는 '플레인한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투명인간이 되어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들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자신을, 자전거를 타고 "자갈길을 따라 달리다가 높은 창문에 판자를 대놓은, 이제는 텅 빈 낡은 발전소 건물을 지나쳐 메인 스트리트로 접어든 다음, 튕기듯 철로를 가로질러 포석이 깔린 철도역 구내에 도착"(p.21)해 숨을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짜릿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플레인'한 것은 서술방식 뿐만이 아니다. 소설에서 교대로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플레인'하다. 지극히 평범한 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고 숨김없이 행동한다. 타인을 돕거나 괴롭히면서도 속으로 잇속을 따지는 꿍꿍이셈이 없고, 원하는 만큼 기뻐하고 감동하는 동시에 양껏 좌절하고 우울해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과 날것의 자신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현실 속 우리와 닮지 않은 듯 닮았다. 어찌 보면 이렇게 '우리와 닮지 않은 듯 닮은' 이들이야말로 가장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작품에서 '플레인'하지 않은 건 당연하게도 삶뿐이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지독하게 엉망이기(pretty messy) 마련"인 삶은 소설에서도 역시 원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굽이치고 범람했다가 역류하고 고갈되기도 하면서. 이처럼 "지독하게 엉망"인 삶을 작가는 시종 담백하고 깔끔한 어조로 보여준다. 언뜻 냉담하게도 느껴지는 이야기를 가만 살펴볼수록 독자는 깨닫는다. 이 소설 자체가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지독하게 엉망"이지만 우리와 관계없이 매정할 정도로 무심하게, 에누리 없는 속도로 흘러가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이니까.


​이처럼 '플레인(plain)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플레인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플레인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마음 속 한귀퉁이가 뜨뜻미지근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느슨하게 연결된 채 서로에게 가닿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받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을 주기 마련인데, 이 소설이 건네는 그것은 미적지근하다. 말그대로 아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묘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맥퍼런 형제나 스턴스 부인과 같은 노인들에게 애정이 쏠렸다. (노인이라고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오랜 세월 온몸으로 삶을 통과하는 동안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진, 너그럽고 지혜로운 노인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권여선 작가의 <봄밤>에서 요양원 노인들을 두고 표현한,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라는 문장이 절로 떠오르기도 했다.


​_모든 소설에는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인도하는 빛이 있다. [플레인송]을 읽는 독자는 "줄곧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빛"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줄곧 희미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눈을 감아도 오래도록 "어른거리는 빛"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