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_"하루가 너무 길어, 하루가. 저기 열차 지나가는 거 보이지? 밝을 땐 내가 여기 창가에 앉아서, 열차 지나가는 거 본다. 그리고 저 아래 농협 주차장에 차들 오고 가는 거, 물건 싣고 내리는 거 구경하고. 그래도 시간이 많아서 대충 점심 챙겨 먹고 지하철을 타. 어디 가냐고? 가긴, 무슨.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어. 그냥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 구경하는 거야. 이 놈은 뚱뚱하고 저 놈은 빼빼하구나, 하면서. 집에 있으면 외롭고 울렁증이 나서 못 있어. 일본에 사는 네 막내고모가 한 달간 여기 있다가 다시 돌아갔잖냐. 오늘이 9월 8일이니까 딱 한 달 됐구만. 네 고모 일본에 돌아간지. 고것이 가고 나니까 더 울렁증이 나. 고것이 소파에 앉아서 TV 보던 게 아른거리고, 저 빈 방에 누워 자던 것도 눈에 선하고. 나는 에어컨 한번 안 틀고 여름 나는 사람인데, 고것이 '엄마, 더워. 에어컨 좀 틀자' 라고 말하던 것도 생각나고. 고것 가고 내가 울렁증이 더 심해져서 약도 지어 왔어. 이거 봐라. 불안, 초조라고 써 있지? 근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이제 내가 90인데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 싶으면서도, 곧 죽겠거니 생각하면 무서워. 난 죽고 싶지 않은데. 네 아빠가 이렇게 몸에 좋은 거 사다주고 효도하는데. 죽으면 이런 거 못 받잖냐. 밤에 자리에 누우면 내일 아침에 다시 눈을 뜰 수 있으려나 겁나서 통 잠을 못 잔다. 저기 침대 옆에 두루마리 휴지 갖다 놓고 혼자 질질 짜는 거야. 내 나이 90인데 말이여."
_추석 전에 친할머니를 뵙고 왔다. 올해 90세가 되신 할머니는 당신의 첫 손주인 나를 앞에 두고 눈물을 훔치면서 이렇게 하소연을 하셨다. 울렁증약이라고 보여주신 건 한의원에서 지어오신 것 같은데, 청심환통 같은 작은 통에 쥐눈이콩 크기의 까만 알약이 여러 개 들어 있는 거였다. 성분이 의심되는 그 울렁증약을 먹고도 진정이 안 된다는 할머니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대 머리맡 한쪽에 꼬깃꼬깃 구겨져 뭉쳐진 휴지조각들을 보며 전날밤에도 또 우셨을까, 생각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손잡아 드리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마다하시는 손에 쥐어드린 것밖에 없다. 그리고 그후로, 동두천의 작은 아파트 베란다 창가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가끔 떠올리는 것도.
그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운전하시는 아빠의 다 벗겨지고 얼마 남지 않은 흰머리를 보면서 마음이 이상했다. 시댁에서 추석을 보내면서 나를 첫 며느리로 맞으실 때보다 많이 연로해지신 시부모님을 보면서 마음이 이상했다. 이제는 허리 아프고 다리 아파서 더는 못한다고, 하면서도 계속 음식을 해 챙겨주는 친정엄마의 통통 부은 다리와 손목을 보면서 마음이 이상했다.
아침 산책길에 자주 마주치는,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 산책이라고 하지만 운동 삼아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나는 보행보조기를 끌거나 아주 천천히 걸으시는 그분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지나치면서 종종 생각한다. 그분들이 보시기에 아직 새파랗게 젊은 내가 아직은 건강한 다리와 허리를 하고 당신들을 빠르게 지나쳐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했다. 나도 언젠가는, 운명이 허락한다면, 저분들의 나이가 되어 같은 처지가 되겠지, 그때 나는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더 이상했다.
마음이 이상했다, 는 표현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한심하지만, 이걸 굳이 설명하자면. '이상한 마음'의 성분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슬픔, 회한, 무력감, 상실감, 체념, 허무, 고독, 수치, 당혹, 인내, 자책, 두려움, 자조...너무 많은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채 소용돌이치니, 이것을 제대로 표현하기란 내 어쭙잖은 깜냥으로는 불가능한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낸시의 어머니와 함께 만을 헤엄치던 남자는 자신이 가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꾼 적 없는 곳에 이르렀다. 이제 망각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지금이 그 먼 미래였다."(p.167)
"그는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지금 살아 있기를 바라는 갈망, 그래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갈망도 감당할 수 없었다."(p.177)
_<에브리맨>은 이런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다, 결국 죽는 이야기. 누구나 알면서도 누구나 모르는 이야기, 누구나 알고 싶지 않은데 결국 누구나 알게 되는 이야기.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놀라운 통찰과 혜안의 파도 속에서, 전율 같은 어떤 선득한 감동 속에서 탄복을 거듭했다.
이 소설은, 내 삶이 허락한다면, 10년 아니 20년이나 30년, 어쩌면 40년 후에 반드시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어른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이 모든 것의 직접 당사자가 되었을 그때의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