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유언을 만난 세계]

마흔이 넘으면 사람과 삶,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제대로 나이를 먹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고, 또 살면 살수록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가 든다. 이와 동시에 명확한 사실 하나가 드러난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계는 대체 얼마나 작고 좁은 것이었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한 것이었는지.


타인에게 이입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타인의 삶과 감정과 생각과 불행과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 그렇지 않다는 해답을 알고도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삶에 이입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한평생 '변방의 존재'로 머물다 죽음의 순간조차 불평등했던 여덟 명의 열사가 온몸으로 부딪혔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가만히 앉아 문장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지쳤고 고단했고 고달팠다. 수많은 정념들이 어지럽게 휘몰아쳐 머리속은 혼란스러웠고 수치심과 자괴감이 스멀스멀 피어나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정리되지 않은, 정리할 수도 없는 단어들이 내 몸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인간, 인간답게, 인권, 존엄, 삶, 생존, 죽음, 욕구, 목소리, 꿈, 희망, 가족, 우정, 사랑, 생계, 노동, 기대, 자격, 불행, 불운, 운명, 모멸, 멸시, 비참, 단절, 소외, 배제, 절망, 좌절, 박탈, 희생, 투쟁, 싸움, 책임감, 개인, 사회, 소수, 변방, 책임감, 의무, 공생, 공존, 모두, 함께.....이렇게 맥락도 두서도 없이 줄줄 흐르는 생각들이 모여 결국 하나의 웅덩이가 되었다. '왜' 라는 웅덩이. 나는 이 웅덩이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대체 왜, 왜, 왜. 시간이 지나자 '왜' 라는 의문은 '어떻게'로 바뀌었고 이내 '무엇을'이 덧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은 의문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할까? 였다.


"월드컵 뉴스의 홍수 속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한 몇 안되는 뉴스들은 '1급 뇌병변장애인' '비관' '자살' 등의 말로 그의 죽음을 요약했다. 이러한 단편적 정보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등질만 했다고 재빨리 이해했다. 그들은 장애인의 삶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불쌍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박기연의 죽음은 세상의 수많은 불운 중 하나에 불과했고, 사유하지 않아도 되는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안타까워했지만 분노하지 않았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슬픔과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들에게 박기연은 그렇게 떠나보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답을 알면서도 오랜 시간 수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도대체 그가 왜 그랬을까. 왜, 그가 죽어야만 했을까."(p.258)


불평등과 불행의 수수께끼는 풀 수 없고 삶과 운명과 세상이 대체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감히 다짐했다. 쉽게 요약된 단편적 정보만으로 타인의 삶과 고통을 재빨리 이해하고 잠시 안타까워하다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고. 그런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고. 더 이상 그런 사람으로 살면 안 된다고. 함께 슬픔과 분노로 몸을 떠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깜냥이 된다면 나도 어떻게든, 무엇이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니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한낱 보잘것없고 어쭙잖은 나지만 내가 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쩐지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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