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쓰러지다], 희정
_지난 주말 광주에 다녀왔다. 얼마만인지 모르는 자유 부인(?)의 몸으로. 토요일 아침 일찍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용산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여유 있게 도착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서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광주송정행 KTX가 보였다. 그리고 자체 확대되어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러 방향으로 어지럽게 놓인 선로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서 하얀 모시이불처럼 눈이 얇게 덮인 선로를 내려다보았다. 환영일지 모를 어떤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선로 위에 웅크리고 앉아 레일 보수에 열중인 투명한 노동자들. 보통 사람들은 으레 코레일 직원이겠거니 여겼을, 코레일 산하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기술자는 몇 명만 있고 나머지는 인력시장에서 구해"(p.95)온 사람들이라는 그들은 빠듯한 작업 기한에 쫓겨 일을 서둘렀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불안해 보였다. 시간이 되어 KTX는 출발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빠르고 편리한 열차 안에 앉아 생각했다. 내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구나. "시일을 어길 경우 철도공사로부터 다음 작업을 수주받는 데 불이익을 당"하므로 "목숨을 걸고 일을 서둘"러야만 하는, "역에 대한 정보와 지형 파악이 이루어질 리 없"(p.96)는 용역업체 노동자들의 피땀눈물, 때론 목숨이 서린 그 선로 위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운명(?)처럼 전날 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눈발 흩날리는 용산역 플랫폼은 그저 낭만적인 풍경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주송정역을 청소하는 이들과 매표원들의 소속이 코레일인지 하청업체인지 절대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단지 열차를 타고 원하는 곳에 가기만 하면 되는 들뜬 여행객일 뿐 "한 해 2000여 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제2, 3, 4...의 김용균들이 자꾸만 발생하는 뉴스에 잠시 마음 아파하고 세상을 원망하다 이내 잊어버리곤 하는 '노동 감수성' 제로인 사람들 중 하나이니까.
_이런 내가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다룬 이 책, <노동자, 쓰러지다>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나 있을까. 다만 감히 이 한마디는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는 것을. 이 앎으로 인해 분명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고 또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손바닥만하던 편협한 내 감각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는 것을.
"노동안전보건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인간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그는 '감수성'이라 대답했다.(...)그는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아파하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회보다 더 문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다."(p.57)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일자리에서 내몰리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비정규직 일자리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하청 노동자, 계약직 노동자의 처지가 어떤지 너무나 잘 보았다.(...)비정규직 노동자 역시 자신이 여기서 나가봤자 더 나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음을 안다. 이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값싸게 부리는지 몸소 겪어 안다. 오래 일하기 위해 버틴다. 일은 넘치게 주어진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앞장서 도급을 주고, 위탁을 맡기고, 하청 노동자들을 만든다. 그럴수록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한다. 더 빨리 몸을 망가트린다."(p.232)
"1퍼센트밖에 안 되는 대기업을 중소업체와 영세업체가 둘러싸고 있다. 둘러싼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중층적 다단계 하청 구조'. 영세 사업장의 저임금에 기반을 둔 수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가져간다. 단물을 빤 이들이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p.340)
"원칙적으로 모든 산재는 예방 가능하다.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산재 예방의 기본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놓고 노동자 실수를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p.86)
"'유사한 사망과 사고가 몇 년, 몇 개월을 주기로 계속 일어난다면' 이것은 '시스템이 사고를 부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추모할 일이 아니라 미안해하고 죄스러워 해야 할 일이다. 반복적인 죽음을 불러오는 시스템이 몇 십 년을 거쳐 유지되고 있다는 소리이니 말이다."(p.158)
_"우리는 중대재해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는 미필적 고의 같은 말로 가릴 수 없는 범죄이다. 기업은 더 많은 이득을 위해 사람 죽는 것에 눈을 감았다. 몇몇 기업만이 아니다. 이 사회가 그러했다. 그로써 벌어들인 이득을 이제는 뱉어내야 한다. 이득을 얻은 기업이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노동자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는 법안과 지원책을 내야 한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세워야 한다.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의 노동을 지양해야 한다. 산업재해 수치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사고 은폐 행위를 멈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죽지 않는다."(p.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