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_사회복지재단 세 곳에 정기후원을 하고 있다. 매월 정해진 날짜에 만 원씩 기부하는 자동이체 방식이다. 사회가 소외 계층이라 규정한 사람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마음이 무겁다. 돌덩이 하나가 비집고 들어온듯 먹먹해진다. 가장 손쉬워 보이는 자동이체 기부를 선택한다. 보잘것없는 푼돈이지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체한 것처럼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내가 보고 들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눈 것 같다. 딸깍, "손가락 하나 까딱해" 계좌번호를 입력하거나 신용카드 결제 버튼을 클릭하는 간편한 행위로 나는 도덕적 부담감을 일부 덜어낸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 아픔을 나눈 것이라 애써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어쩐지 떳떳하지 않은 부끄러움이 오래도록 남는다. 왜 그럴까.
나는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종의 윤리적 "판타지"에라도 기대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가 할 도리를 얼마간 했다고 여기고 싶기 때문이다.
_그러나 착각이나 판타지에 불과하더라도 "고통에 공감한다"고 우기고 싶은 사람들이 내겐 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 8년 전 찾아온 희귀난치병으로 하루도 빠짐 없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아슬아슬 오가는 딸아이를 돌보며 나는 감히 그들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생각했다. 공감이란 것에 한계가 있다면 그 끝까지 다다르고 싶었다. 그들이 온몸으로 부딪혀 통과한 삶과 앞으로 나아갈 삶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변에선 찾을 수 없으므로 관련된 책과 영상을 몇 번이고 뒤졌다. 그 속에서 낯설진 않지만 익숙해지지도 않는 감정의 웅덩이 - 환멸과 절망, 죄책감과 수치심, 자기혐오와 자기연민, 무기력 - 를 찾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공감하고 싶었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예고도 없이 행로를 틀어버린 삶에 휩쓸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은 채 헤매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모계유전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인생이란 잘못이 없어도 언제든지 흔들리고 고꾸라질 수 있는 것임을 똑똑히 보고 듣고 싶었다.
그렇게 고통에 공감하려 애쓰던 내게 어떤 깨달음이 어렴풋이 찾아왔다. 누군가의 고통을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의 위치 아니 그가 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공감하고 싶다는 건 어쩌면 나도 모르게 "학습된 고정관념"에 의해 그 본연의 "주체성"을 빼앗고 멋대로 "대상화"한 그의 고통을 납작하게 바라보기를 원하는 내 욕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코다(CODA)다. 그녀는 코다로서 자신과 부모가 지나온 삶을 덤덤히 고백한다. 장애를 가졌기에 "수용되고 포용되기보다 차별받고 거절당한 경험이 더 많"은 그녀의 가족에겐 사실 불행한 일만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리거나 혀를 찼다. 그들이 처한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해 불쌍한 사람이라고 뭉뚱그려 판단하고는 고통에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는 불편하다. 그래서 말한다. 당신들은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고통을 납작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배우고자 하는 진심이 공감에 가장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_감히 짐작하건데, 작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코다로서의 자신과 농인 부모이리라 생각한다. 8년 전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행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 내 인생의 주제가 아픈 딸아이와 내가 되어버린 것처럼. 내 평생의 숙제이자 숙원(宿願)이 내 고통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않겠다인 것처럼. 아픈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게 되었"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지금의 내가 어쩌면 다른 삶을 살았을 나보다 훨씬" 나은 나로 살아가리라 매순간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고통에 공감한다"고 착각하며 살 것이다. 마음이 먹먹해질 때마다 나는 윤리적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 또 손쉬어 보이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달라졌음을 안다. 공감이란 착각이고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불행과 고통이 내게 찾아온 이유가 "나를 좀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믿기로 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아직 조심스럽고 자신도 없지만) 기부나 후원과는 별도로 소설 쓰기라는 방식으로 "고통에 공감"하기로, 될 때까지 해보기로 결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