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각자의 시간을 기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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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 개봉했다. 코로나 사태에도 영화는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2차, 3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고, 영화 리뷰 채널 크리에이터들은 앞다투어 이 영화를 해설하고 해석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역대 어느 영화보다 난해하기 짝이 없고, 스토리 흐름의 이해를 위한 어떤 친절함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을 역행하는 기술을 이용한 미래와 현재의 전쟁을 그린 이 영화는 그 러닝 타임의 절반을 그대로 쪼개어 접어 붙여 놓은 듯한 스토리 흐름을 보여준다. 거기에 각 등장인물들의 인버전(시간 역행) 상태가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 인터스텔라, 인셉션, 덩케르크 등에서도 보였던 시간을 이용한 편집 영상과 스토리 전개는 이 영화에 비하면 가소로울 지경이다.
영화는 보는 이의 시간을 잡아먹는 예술이다. 영화의 제작은 몇 개월에서 몇 년에 걸쳐 제작되지만, 관람하는 이는 이를 단 2시간 이내로 소화시켜내야 한다. 이미 익숙하기에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는 영화는 그 등장 초기에만 해도 그 화면이 뿜어내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부적응된 사람들에게 악마의 기술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영화산업은 발전해 나가며 단순 영상 기록 장치들이 음성 기록 장치와 함께 만들어지면서 기술은 또 하나의 연금술을 발휘하는데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
음악 없이 영화를 본 적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에 있어 음악은 정말 중요한 요소중 하나이다. 몇 개월에 걸쳐 촬영된 영상의 조각들이 하나의 시간 흐름 위에 있는 듯 느끼려면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혼돈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준점을 인류는 이미 옛날 옛적부터 가지고 있었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과거의 상태로 돌려놓기도 하고, 본능적인 감정 등을 인위적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스토리에서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음악과 음향을 통해 더 많은 감정을 받아들인다.
테넷은 시간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시간을 다루지만 테넷은 그보다 더 복잡한 시간의 흐름을 다룬다. 그렇다면 음악 역시 테넷의 시간 표현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아니 테넷이 시간 표현 방식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음악이 흐르는 실제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이 불친절한 영화를 보며 유일하게 느낀 자비는 음악이 그 불편함을 표현해주면서 동시에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해준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돌아서 나오면서 뭘 봤는지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상황과 상황들의 감정들이 음악과 너무 멋들어지게 어울려 마치 '내 마음을 움직였다' 즉 ‘재미있었다’라고 느끼게 해 준다.
테넷의 OST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원한 짝꿍 한스 짐머가 참여하지 않았다. 한스 짐머의 스케줄의 문제로 러드윅 고랜슨(Ludwig Goransson)이 참여하였다. 그는 영화 블랙펜셔와 베놈 등의 영화 OST를 작업한 작곡가이다. 영화만큼 OST를 유명하게 만들어 내는 거장 한스 짐머의 부재가 느껴질 줄 알았는데 러드윅은 영화의 특징을 완벽히 이해하고 작업해낸 느낌이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기존 오케스트라를 이용한 단조로운 멜로디에 악기 각각의 음향적 특징들을 최대한 살려서 영상 속 스토리를 돋보이게 했다면 러드윅은 영화 테넷에서 오케스트라적 풍성함과 더불어 신스 악기들을 이용해 그 풍성함에 질감을 표현한 느낌이다. 거칠고 끈적하고 희미하고 시간의 흐름대로 흐르지 않는 듯한 소리들은 영화 테넷의 난해함과 함께 어우러졌으며 스토리의 난해함을 잊을 정도의 몰입감도 만들어 냈다.
영화의 감동을 다시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더 좋은 방법은 OST를 찾아 듣는 것이다. 그 영화음악이 내 삶의 빛깔과 어우러져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를 다시 복습하는 것을 떠나 삶 자체가 해당 영화의 색채로 채색되는 것이다. 이는 테넷 영화에 등장하는 시간을 역행하는 기술보다 더욱 경이로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연금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