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디즈니 영화를 보고 자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간다기보다는 모든 걸 다 갖춘 왕자님과의 결혼으로 '싹 해결' 이런 느낌이 들어서 아무리 디즈니 영화라고 해도 공주가 나오는 영화는 굳이 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근 어린 조카와 이야기하던 도중,
"이모, 신데렐라 봤어? 고양이 얄밉지?이모 몰라?"
신데렐라에 고양이가 나온다는 장면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이 안나는데, 자꾸 조카가 이모가 신데렐라도 안봤네 바보네 뭐네 해버리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같이 보게 되었다.
얼레? 신데렐라가 원래 이런 내용이었나?
20여년 만에 다시 본 신데렐라에는 생각치도 못한 장면들이 있었다. 순종적인줄만 알았던 신데렐라가 사실 욱할 줄도 아는 캐릭터라는 점이었다. 아침에 시계탑이 울리자 '아 일어난다고!!' 하며 짜증을 내는가 하면, 계모의 고양이가 기껏 치워놓은 바닥을 해집어 놓자 욱하며 고양이를 쥐잡듯이 쫓아간다. 동시에, 새엄마의 말에도 살짝씩 소심한 반항을 하는가하면 일이 풀리지 않을때마다 바닥에 걸레를 집어 던지면 '하면 되잖아!'하는 식으로 투덜거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무도회에서 만나 한참이나 함께 춤을 춘 사람이 왕자인줄도 모르지를 않나, 무도회에 가고 싶은 이유가 일상에서 벗어나 예쁜 옷 입고 춤추고 싶을 뿐이지 결혼을 위한 것이 아님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나오며, 결혼으로 인해 팔자 고쳐보겠다는 마음으로 무도회에 임했던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처음에는 내가 평생 '신데렐라는 ~ 것이다'하고 세워놓았던 공식과 부합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요즘 세대의 관점으로 보면, 신데렐라는 엄청난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온갖 구박과 언어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십대 소녀이다.
그 누구의 보호 없이도 혼자 씩씩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강인한 소녀로 보여지기도 했다. 수 많은 역경에도 이웃에 잘 배풀고 씩씩하게 살았기 때문에 여러 동물 친구들과 마법사의 도움을 받고, 자신만의 운 때가 우연히 잘 따라줬던게 아닐까 싶어 고맙고 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우연이든 뭐든 그녀가 백마탄 왕자를 만나 인생 핀 건 맞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데렐라 나름 자기 곤조는 있는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데렐라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백설공주도 있다. 이 친구는 다른 행성에서 왔나 싶을 만큼, 더 씩씩하다.
14살 나이에 계모에게 하녀처럼 부려짐은 물론, 계모의 계략으로 죽음의 위기에 쳐해져 쫓기는 상황에서도 백설공주는 주저앉아 울거나 신세한탄 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 본인보다 나이 지긋이 있는 어른 7분을 모시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세상 잔소리 많은 엄마처럼 굴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애인지 모를 정도다.
물론 진정한 사랑을 찾아 행복하게 살겠다며 영화 중간 중간 행복 타령하지만, 어딜가든 큰 살림들을 뚝딱해내는 똑순이 백설공주라면 나라의 국모 역할도 똑소리나게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고해서 100% 이 공주 영화들을 좋게만 바라본다는건 아니다. 시대상이 반영된 전래동화인지라 여성의 가장 큰 미션은 '결혼'이라는 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강조된 부분은 여전히 아쉽긴하다.
하지만 이 디즈니 공주들이 아무 능력이나 역경없이 예쁜 얼굴만 믿고 백마탄 왕자를 만나 결혼했다 이건 아니라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그들도 그들만의 숨겨진 이야기와 강인함이 있었구나~하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