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주택을 마련하다 9
집도 인연이 있다. 사람이 제 짝을 찾아 가듯, 집도 제 주인을 기다린다. 나는 이 동네로 이사와서 미용실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점 찍어 둔 집이 매매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눈여겨 보던 집이 매물로 나왔다. 단독주택을 팔 때 보유기간이 6개월 남아서 세금을 꽤 물고 이 집을 마련했다.
"이 집 누가 샀어요? 얼굴이나 봅시다."
"제가 주인인데요. 왜 그러시는데요?"
"내가 살려고 흥정 중이었는데, 금방 팔렸더라고요. 한 발 늦었네요."
"마음에 드는 건물이나 땅은 웃돈이라도 주고 사야지요?"
집도 운명이라면 내 집이 될 팔자였을까. 이 집을 사려고 마음 먹고 있다가 놓쳤다는 사람들이, 새 주인 얼굴이나 보자며 대 여섯명 찾아 왔다. 동네 약국과 미용실이 딸린 시장 앞, 몫 좋은 상가주택이었다. 미용실이 있으니 체면상 집 상태도 보지 못한 채 언니에게 건물 상태를 둘러 보라고 부탁했고, 튼튼하고 거의 새집이어서 망설임 없이 계약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이 집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집에서 건강지키고 소원 이루며 잘 살아 가고 있다.
결혼 후 미용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바로 미용실을 운영했다. 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가게는 장사는 잘 되었지만,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문을 열어 놓으면 길거리 먼지가 그대로 날아 들었고, 연탄 난로나 석유난로를 켠 채 문 닫고 일해야 했다. 가스에 중독될까 봐 조마조마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하루 종일 유해한 공기 속에서 일하다 보니,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몸에 기운이 없고 비실거렸다.
‘상가주택 마련은 나에게 간절한 목표가 되었다.’
시장 앞 정문에 있는 상가주택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 당시에는 가격이 너무 높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어서 이 집이 매매로 나오면 내가 꼭 사야겠다고 침을 발라 놓았다. '이 건물만 사게 되면 더 이상 집 욕심 안 부릴게요.' 나는 날마다 우리집이 될 건물을 보며 신에게 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집에서 소원을 이루고 잘 살고 있으니 터 신과 내가 합이 잘 맞는 것 같다.
결혼 후 삼 년 만에 단독주택을 마련했다.
내가 직장생활하며 번 돈으로 논을 사 두었다가 팔았고, 명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처녀 때부터 알뜰하게 살면서 돈을 꽤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내 집을 샀다. 다음 목표는 시장통의 상가주택이었다.
상가주택 구입하기 2년 전부터 그 집이 매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저 집이 매매로 나오면 우리집 된다.’ 벼르고벼르다 상가주택이 매매로 나오자, 단독 주택을 급하게 팔게 되어 세금을 많이 물었다. 상가 주택을 한 푼도 안 깎고 사게 되었다.
새로운 집은 꿈을 알처럼 품고 있었는지, 이사 후 주거가 안정되니 내 인생 엎그레이드 되어 삶이 달라졌다. 넓고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림도 하고 미용실을 운영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니, 몸 속 깊이 배어 있던 나쁜 노폐물이 조금씩 빠져 나가고 건강해져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2층 주택도 구조가 잘 빠져서 사방이 훤했다. '삼대가 복을 지어야 사방이 트이고 훤한 곳에 살 수 있게 된다'는 말이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았다. 가게 바로 앞 아파트 화단이 있어서 사계절 꽃이 피고 ‘사람 사는 맛’이 나고 인생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좁은 가게 쪽방에서 기거하던 때와는 천지 차별이었다. 대학 갈 준비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이사하고 나는 춤을 추었다. 친구들이 집들이 와서 말했다.
"어린 아이 데리고 그 좁은 곳에서 어떻게 참고 살았니?"
"돈 샐 곳이 없어야 하니 좁아도 참고 살았지. 그러니까 빨리 내 집을 찾아서 안정을 찾은거야!"
이 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을 키워 준 공간이 되었다. 삼 십 여년 가족 모두가 무탈하게 잘 살고 있고, 직장과 주거를 할 수 있는 이 집에서 하고 싶은 꿈을 맘껏 펼치며 살았다. 직장, 주거를 함께 하니 출, 퇴근 하지 않아도 되고 살림도 틈틈이 할 수 있어서 인건비가 절약 되었다. 몸과 마음이 편하고 큰 도로 옆 찻길에서 생활 할 때보다 아이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어서 좋았다. 목표를 향해 앞, 뒤 재지 않고 일을 추진한 덕에 원하는 집을 손에 넣었고 꿈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자영업 할 사람은 집 마련보다 월세 낼 돈으로 대출이자를 갚더라도 자기 점포를 먼저 마련하라고 말하고 싶다. 코미디언이 식당을 운영하는데, 식당이 번창해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장사하기 위해 월세 내는 대신 대출 끼고 마련한 건물이 가격이 올라서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고 하는데, 그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가지 목표를 세우면 성사 될 때까지 올인하는 사람이다. 인디언 추장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듯, 나는 내 꿈이 이뤄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내 역량껏 직장, 가정, 공부를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병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젠 좀 편하게 살지 고생거리를 만들어 사냐고 하는데, 힘들어도 보람이 있어서 내가 사는 방식이 좋다.
이 집은 나에게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삶을 야무지게 살아 낼 상징이고 의지처였다. 노력과 인내가 만들어 낸 결실,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고마운 공간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은 주위의 집들이 재개발 후 빌라단지로 변할 때도 합류하지 않았다. 집 안과 밖을 리모델링 해서 새 집처럼 살고 있다. 이 집에서 삶이 다 할 때까지 건강하게 계속 꿈을 꾸고 이루며 살아 갈 것이다.
'우리집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