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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예술, 그 너머 12

죽을 때 사람도 신호를 준다

by 아모르파티

설흔아홉, 꽃다운 나이에 언니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작은오빠까지 뒤따라 갔다.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고, 내 몸의 한쪽이 뜯겨 나가는 듯 아팠다. 언니의 무덤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내년에는 내가 이 무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언니는 간경화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형부는 언니를 치료하겠다며 중국으로 데려갔다. 한국 의술이 더 나은데 왜 굳이 중국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병세가 악화하자 형부는 다시 언니를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언니는 운명을 달리했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던 날, 언니는 신발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언니가 떠난 후, 언니네 집 앞마당에서 싱싱하게 자라던 등나무도 마치 언니를 따라가듯이 곧 말라 죽었다.


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굳어버린 입을 들썩여 기사에게 목적지만 간신히 말했다. 한창 피어날 나이인 설흔 아홉살 언니가 죽다니, 어기차서 말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몸이 멍하게 굳었다.

병. 실에 도착했을 때, 언니는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형부는 언니가 간암이라는 사실을 본인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가실 분에게 마음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형부의 부탁을 지켜 주었다.


"언니, 딸 걱정 마. 내 딸로 키울게."


죽어. 가던 언니는 10살 먹은 딸 걱정을 많이 했는지, 내게 고맙다며 안도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주르륵 흘러내렸다.

남편. 격이 온화한 성격이라 우리 집에서 키우면 조카도 안정될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언니가 숨을 거두려는 순간, 형부는 전화를 받으러 병실 밖으로 나갔다. 셋째 언니는 갑자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언니가 곧 죽을 것 같아!, 왜 이언니,왜 갑자자졸아 !"


나는 셋째 언니를 흔들어 깨웠지만, 꿈속을 헤매듯 비몽사몽이었다. 숨 넘어 가는 언니를 두고 형부를 찾으러 갈 수도 없었다. 결국, 언니의 임종을 혼자 지켜보았다.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가족들에게 언니를 보게 하려고 의사에게 임종을 알리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 친척들이 도착한 후에야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화를 냈다.


"숨이 끊어지면 몸이 바로 굳어요. 입관할 때 팔을 부러뜨려야 할 수도 있어요. 망자의 팔을 분질러야 하겠어요?요?

그제야 실감이 났다. 언니가 떠났다는 사실이.


장례식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큰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언니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죽은 언니 남편의 품에 안겼다. 그러더니 영안실 한복판에서 천장 높이까지 무당처럼 온몸을 날려 뛰기 시작했다. 장정 셋이 달려들어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셌다.


"얼마나 원통하면 이렇게라도 한을 풀려 할까…"


겨우 큰언니를 집으로 모셔 갔지만, 여전히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걱정이 되어 내가 다니는 절의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줄초상이 날 수도 있으니 큰언니부터 절에 모시고 오세요. 그리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사십구재를 지내세요."


형부에게 스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기도비 많이 내고 목사님 모셔다가 기도했어요."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 언니를 위해 목사님을 불러 기도몇백만원 죽주고했다는 형부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형부가 결정한 일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며칠 후, 형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십구재를 지내기로 했어요."


기도를 올리고, 부처님 전에 정화수를 떠놓았다. 큰언니에게 정화수를 마시게 하자, 그제야 의식이 돌아왔다. 큰 언니는 어깨를 짓누르던 까만 정체가 떠나서 몸이 날아 갈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형부의 형수인 사돈이 퍽 쓰러졌다.


"아이고, 어떡해!"

"멀쩡한 사람 다 서 있는데, 왜 하필 그 사돈이 쓰러졌겠어? 돌아가신 분의 원한이 맺힌 거지."


평소에도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돈이다. 언니가 아플 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돈 문제 갈등을 풀지 못하고 언니가 떠났다. 그런데 기도하던 자리에서 그가 갑자기 퍽 하고 쓰러진 것이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멀쩡한 사람들 많은데 왜 하필 그 사람이 쓰러졌겠어?"

"죽은 사람 원한이 남아서 그런 거 아냐?"

사돈은 앰블러스에 실려 갔다.

언니의 딸, 조카는 그때 초등학교 3학년 이었다. 엄마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는 조카가 걱정되어 우리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내며 학교를 보냈다. 남편도 조카를 친딸처럼 대해 주었다.

조카는 한 시간거리인 서울 리라초등학교로 전철 타고 다니느라고 힘들어 했다. 어렵게 들어간 사립학교를 포기 할 수없다며 몸이 아프면서도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못했던 언니의 유언 같이 생각되어 전학을 안 시켰다.


가끔 엄마가 그리울 때면 찾아오는 조카도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 야무지게 잘 살아가고 있는 조카가 고맙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아직도 마음속에 맴돈다.

"내가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언니는 그 신발을 다시 신지 못했지만 언니가 남긴 기억은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가전 제품도 수명이 끝나기 전에 신호를 주는데,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넷째 언니가 뇌졸증이 한 번 오더니 조금 있으니 뇌졸증이 두 번이나 왔다. 그러고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갈 때가 되면 운명처럼 받아 들여야 하나보다.


이따금 세째 언니를 꿈에서 만난다. 생전처럼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언니 죽음을 보고 공부해야겠다는 실천을 해서 내 삶을 후회없이 산 것 같아요. 먼저 떠난 형제들이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기록을 쓰고 있네요. 언니,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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