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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예술, 그 너머 11

# 커피 한잔을 빗소리 반주 삼아 훌쩍이던 고객

by 아모르파티

봄 날 하늘이 우중충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비 오는 날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느슨해지고 게으름이 피고 싶어지지만 가게 문은 열어야 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층으로 내려와 셔터를 올렸다. 가게 앞 계단에 서 있던 손님이 제 집처럼 문을 열자마자 뛰어든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어서 오세요. 비가 많이 오는데, 우산도 안 쓰고 오셨나 봐요?"


회색 늘어진 티를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묶은 손님은 아무 말 없이 하늘보다 더 우중충한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 폭포수 같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말없이 훌쩍이는 손님의 눈물이 빗줄기보다 더 깊고 무겁게 아침 미용실 분위기를 착잡하게 한다. 어떤 머리를 하실 거냐고 묻기 전에, 그냥 뜨거운 커피 한잔을 타서 드렸다. 손님은 내가 타 준 커피를 빗물처럼 떨어지는 눈물과 섞어가며 훌쩍, 훌쩍 마셨다. 한 시간쯤 그렇게 저승 문턱을 들락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머리도 하지 않고 조용히 가게를 나갔다.


아침부터 불편한 기운이 감도는 손님이 영업집에 와서 눈물 바람을 하고 가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커피숍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미용실이 단순히 머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심리 상담도 해주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고객을 맞이하고, 청소를 하고, 클래식 음악을 틀며, 커피 향을 맡으며 바쁜 하루를 준비하곤 했다.


그 때는 아침부터 울면서 미용실에 들어오던 손님들이 많았다. 그 중 잊을 수 없는 고객이 있다. 멋있게 차려 입은 날씬한 예쁜 새댁이 아침에 드라이를 하러 왔다. 머리 드라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그녀는 한참을 훌쩍이다가 겨우 대답을 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도박이 심하고 자주 때려요. 어제도 나 때리고 나가더니 안 들어 왔는데,아기도 없고 이제 이혼하려고 남편 회사에 찾아가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에 멍이 들었다. 그녀 언니라도 된 듯 화가 난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성질 나는데, 머리할 정신이 있어요? 빨리 가서 뒤집어 놓으세요. 병원가서 진단서도 끊으시구요"


그런 상황에서도 예쁘게 드라이를 하는 그녀가 여성스럽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 시합으로 끝났다. 그 일 이후, 우리 부부랑 함께 홍도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친한 이웃이 되었다. 그녀는 시험관 아기를 열 번 넘게 시도해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를 우리는 "삼천만원짜리 아들"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녀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남편의 직원들을 위해 음식을 해주고, 살림도 야무지고 깔끔하게 잘했다. 서울로 이사간 후 멀어졌지만 가끔 미용실에 들러 소식을 전하다 끊겼지만, 상냥하고 예뻤던 그녀는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미용이라는 직업을 통해 만난 수많은 고객들, 그들의 애환을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때마다 내 손길이 그들 삶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그 동네를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비 오는 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빗소리로 마음을 가라 앉히던 그 고객처럼, 우리 모두는 때때로 인생의 어두운 면을 순간순간 교차하며 산다. 그 속에서도 따뜻한 손길을 맞잡고, 조금만 마음 편하게 기댈 곳이 있다면, 주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 시대에 미용실은 집을 나와 갈 곳 없는 그녀들에게 마음 내려놓고 기댈 사랑방 역할을 똑톡히 했다. 나는 서툴게 미용실을 오픈하고 고객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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