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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진 Jul 22. 2019

나는 걷고 싶어

산티아고 순례길




열째 날, Santo Domingo de la Calzada



6시, 나 홀로 출발!

    지영이와 나는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만약 서로의 일정이 달라져도 개의치 않고 각자의 까미노를 가자고 약속했었다. 나는 서로가 원하면 따로 걷다가 산티아고에서 만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 새벽,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왔다. 조금 더 자고 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지영이에게 나는 걷고 싶다고, 먼저 출발하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방을 멨다.


처음 떨어진 거라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님 다른 곳에서 순례길을 이어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떠났다.



귀여운 화살표를 발견할 때마다 웃음이 난다.



한창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 캘리포니아에서 온 제임스를 만났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그는 새벽 다섯 시까지 숙소에서 파티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와,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걷고 있는 거야?"

"나도 내가 어떻게 걷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어제 본 축구 경기가 생각났다.


"제임스, 어제 축구 봤어?"

"응. 우리 같이 봤잖아."


우리가 같은 숙소에 있었다고? 심지어 축구 경기도 같이 봤다니.. 난 초면인데.. 그러고보니 언뜻 본것같기도하고.. 잠깐만 그럼 새벽까지 있었다던 파티도 우리 숙소였던거야? 파티를 하는 줄도 몰랐다. 나 정말 너무나 건전하고.. 성스러운.. 스케줄로 순례길을 걷고 있는 거구나.. 아홉 시면 양치를 해야 할 것 같고, 열시면 침대에 누워야 할 것 같은 하루하룬데.. 다들 파티는 언제 즐기고 오는 거야?.. 그리고 그 체력은 또 어디서 나오는 거야..


제임스는 첫 유럽 여행을 순례길 위에서 보내면서 의대 진학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 친구 사진을 참 쿨하게 찍었는데.. 뒤돌아서 찰칵. 손을 뻗어 찰칵.


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


골프장을 지나


다시 논밭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 일정은 20km로 꽤 짧은 거리여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다섯 시간을 걸었다. 지영이는 걸어오고 있었고, 민지는 버스를 타고 이미 산토도밍고에 도착해 있었다.


Albergue de Peregrinos. 숙박 7€.

알베르게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면서 로비에 마련된 과자를 먹고 있었다. 체크인 시간은 11시로 다른 곳보다 빠른 편이어서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알베르게를 고를 땐 주로 구글 지도를 이용했다. 그 마을 공립 알베르게를 검색해보고, 그다음 사설 알베르게를 찾아봤다.

순례길 초반엔 지급받은 안내서와 어플도 참고했었는데, 점점 귀찮아지고 구글 지도의 리뷰로도 충분해서 이용 빈도가 많이 줄었다. 물론 리뷰에 나오지 않는 자세한 것들, 예를 들면 가격, 수용인원, 주방시설 유무, 순례자 정식 유무 등을 참고할 땐 유용했다.


    지영이 이름까지 함께 예약을 하고 침대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넓은 공간에 이층 침대를 여러 개 세워둔 방이었는데, 침대를 세로로 붙여놔서 자칫하면 내 머리맡으로 건너편 키 큰 남자의 발이 닿을 것 같았다. 머리를 맞대고 자기에도 숨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릴 것 같아 신경 쓰였다. 애매했다. 건너편 남자가 어떻게 자는지 보고 위치를 잡아야겠다.


1층 침대를 배정받은 아저씨가 침대 메이트라며 인사를 건냈다. 하이~


민지가 추천해준 사과 패스츄리 2.60€. 존맛~~!!!


오늘 묵을 알베르게에는 세탁시설이 없다. 그래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코인 세탁소를 이용해야 한다. 빵을 포장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세탁소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자전거 탄 꼬마가 말을 걸어왔다.


"Hello. Are you Korean?"


너무 서슴없이 말을 걸어와서 소매치긴 줄 알고 경계했는데, 곱슬머리의 통통한 이 소년은 그저 한국사람과 대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왔어요?, 반가워요 등 자신이 할 줄 아는 한국어로 내게 질문을 했다. 경계했던 마음이 조금 미안해졌다.


    한시를 조금 넘겨서 지영이는 도착했다. 부르고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민지도 우리가 있는 숙소로 왔다. 버스가 이미 떠난 걸 모르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민지는 조금 지쳐 보였다.


숙소에서부터 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제과점에서 생크림인 줄 알았던 머랭빵과 커피 한 잔하고, 저녁으론 바질 파스타를 해먹었다. 후식은 언제나 맛있는 납작복숭아!


    내일은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로 가기로 했다. 지영이도 나도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 부르고스에서 맛있는 거 먹자!




28.06.18 산토도밍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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