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나는 아직 아이 같았다.
몸도, 마음도 덜 자란 채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당시 내 단짝 친구 유나경은 나와는 달랐다.
키는 작았지만 조숙했고,
어른스럽고 예민한 또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릴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나 같은 유치한 아이와도 마음을 나눌 줄 알던,
나에겐 참 다정한 친구였다.
어느 날부터 나경이가 이상했다.
“다은아, 내 좀 따라가 주면 안 되나?”
“왜?”
“그냥… 옆에만 있으면 된다.”
학교를 마친 어느 오후,
나경이 곁엔 키가 크고, 가슴이 나오고,
왠지 나보다 한참 앞서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 아이들 속에 낀 나경이는 작고, 작았다.
“야, 가자.”
나는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
그 아이들 틈에 묻혀서.
“김다은, 니는 왜 따라오는데?”
“아… 내 나경이랑 집에 같이 갈라고…”
“그래, 그럼 그냥 옆에만 있어래이.”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낡고 조용한 오락실 노래방
불 꺼진 기계 몇 대가 멈춘 채 서 있었고,
카운터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었다.
문을 닫자마자, 그 안에서 노래가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경이는 조용히, 무자비하게 맞고 있었다.
나는 문밖에 서 있었다.
무서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경이는 멍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자.”
나경이의 손을 잡고,
나는 그날 집으로 같이 걸어갔다.
“야, 나경아. 엄마한테 말하자.
이거 계속 이렇게 당하고 있던 거가?
학교에도 말해야 되는 거 아이가?”
그때 나경이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니 우리 집 가면…
우리 엄마한테 절대 말하지 마래이
비밀이다. 제발. “
그렇게 내 입을 막은 채,
나는 또 며칠 뒤, 또 며칠 뒤,
그 아이들이 나경이를 데리고 가는 걸 지켜보았고,
가끔 따라가 주었고,
또 문밖에 서 있었다.
어느 날, 나경이는 그 친구들에게서 벗어났다.
어떻게였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애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때 나경이 곁에 있으려 애썼다.
아니,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걸 곁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그 아이가 맞고 있을 때
나는 왜 문을 열지 못했을까.
왜 “나경이 한테 뭐 하는 짓인데!”라고 소리치지 못했을까.
왜 선생님에게, 경찰에게,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을까.
그때 내가 용기를 내서 신고를 했다면,
나경이를 때리던 그 아이들은
다음 타깃으로 나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 방 안에 끌려들어 가
나도 누군가의 주먹 앞에서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내가 겁을 냈나 보다.
아니, 겁을 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친구, 지금은 뭐 하고 살고 있을까.
그 작은 등을 내내 지켜만 봤던 나는
지금 이 나이에 와서도
내가 “그때의 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방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