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숙모는 상냥한 여자였다.
시누이 넷이 있는 집안의 장남에게 시집온,
그 자체로 이미 숙제를 안고 들어간 사람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항상 집에 계셨고,
외숙모와 외삼촌은 맞벌이를 했다.
그래서 사촌오빠와 사촌동생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몫이 되었다.
주말이나 저녁이 되어야 외숙모를 볼 수 있었는데,
내 기억 속 외숙모는 늘 얼굴에는 웃음을 띄우고 있는, 부지런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가능했던 건 외가 어른들의 서포트 덕분이기도 했지만
시누이 많은 집에서, 장남의 며느리로서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감당해야 할 무게였을 거다.
나는 그걸 그때는 몰랐다.
그저 외숙모가 잘 웃고, 부지런하고, 일하러 다니는 멋진 어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돌아가셨다.
장지에서 아빠의 관이 땅속으로 내려가던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 울고 있었다.
외숙모였다.
울음이라기보다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그 눈물이 아직도 기억난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오래 우는 사람.
그게 외숙모였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내게 말했다.
“다은아, 가서 외숙모 안아드려라. 울지 마세요, 하면서.”
나는 엉엉 울면서 외숙모에게 다가갔다.
“외숙모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외숙모는 그 순간 나를 껴안고
“다은아, 어떡하노…” 하며 더 크게 울었다.
그 품이 아직도 기억난다.
말보단 온기가 먼저였던 품.
울음이 다 품어지는 품.
시간이 흐르며 외숙모는 여전히
주말에나 볼 수 있는 존재로 남았고,
엄마는 먹고 사느라 더 바빠졌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어른들의 빈자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외갓집에 놀러간 날, 외숙모가 사촌동생 수아 옷을 사러 시장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내 손도 함께 덥석 잡아끌었다.
외숙모, 수아, 그리고 나—
우린 셋이서 시장 골목을 걸었다.
아동복 브랜드 가게들이 쫙 늘어선 거리에서
외숙모는 하얀 반팔 티셔츠와 반 멜빵 바지를 골랐다.
그리고는 그 옷을 수아에게도 대보고,
내게도 대보더니 말했다.
“이걸로 똑같이 두 개 주세요. 사이즈 맞춰서.”
나는 너무 기뻤다.
그 옷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외숙모가 사줬다는 것도,
수아와 똑같은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 정말,
그 옷만 입었다.
빨아서 마르면 또 입고,
마르면 또 입고.
그 옷이 마르기를 기다리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
한여름에도, 그 멜빵이 청멜빵이라
입고 있으면 등에 땀이 차고, 땀띠가 나곤 했다.
엄마는 “또 그거 입었나! 땀띠 난다, 좀 벗어라!” 하며 혼을 냈지만
나는 땀띠가 나는 줄도 모르고
그 옷을 또 꺼내 입었다.
외숙모가 사준 옷이니까.
그 옷이 좋았으니까.
나는 그 옷을 입고 싶었다.
지금은 기억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그 시절의 외숙모.
주말에만 볼 수 있었던,
하지만 한 번의 포옹과 한 벌의 옷으로
아직도 내 마음 안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사람.
그 사람의 품이,
그 옷처럼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서 마르지 않고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