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중풍 오시기 전까진,
우리 집안에서 ‘이름’이란 건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단, 아들한테만.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니들이 알아서 지으라.”
딸은 그냥 알아서 지으라는 그 말이,
내 이름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서준이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철학관을 후다닥 뛰어가셨다.
“우리 집에 아가 태어났심더, 아들입니더! 이름 지어주이소!”
돌아오시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서준이로 하자!”
그 뒤로는 더 대단했다.
큰삼촌이 아들 둘을 더 낳았는데,
효준이, 영준이.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철학관에 출석 도장 찍듯 이름을 직접 지어 오셨다.
그런데 막내삼촌네 첫 딸 윤아가 태어났을 땐 또 한마디.
“니들이 알아가지어라.”
이쯤 되면, 패턴이 보이지?
딸 = 니가 지어라.
아들 = 내가 지어주마.
엄마는 늘 이 얘기만 나오면 성이 났다.
“느그 할배 말이다,
서준이 이름은 철학관 뛰어가서 지어오고
다은이 이름은 딸이라카니까 ‘알아서 지라’ 캤다 아이가.”
엄마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아서
나는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 복수를 결심했다.
그때는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말도 잘 못 하시고
한쪽이 마비되신 후였다.
그런데 정신은 또렷하셨다.
말은 어눌해도, 영혼은 살아 있었다.
나는 종종 할아버지 옆에서 같이 잤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집에 계신 할아버지가 외로우실까 봐.
이불 깔고 같이 누워 자는데,
그날은 괜히 심술이 났다.
갑자기 옆에서 툭 말했다.
“할배, 왜 나는 이름 안 지어줬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응?” 하더니,
침 살짝 흘리시며 작은 눈을 번쩍 뜨셨다.
슬슬 밀어붙였다.
“서준이는 이름 철학관 가서 지어주고,
나는 딸이라고 이름 안 지어줬다 아이가.
그런 게 어딨노, 그래도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났는데.
딸이라고 막 차별했제?
할배는 서준이, 효준이, 영준이 더 좋아했제?”
할아버지는 당황하셨다.
움직이진 못하시지만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에라이 요놈아, 그걸 지금 따지나!’
그리고 결국 한마디 하셨다.
“올래~ 올래~”
할아버지가 자주 쓰던 말이다.
“올래~”는 경상도 사투리로
“안 돼, 그만해라, 하지 마라” 같은 뜻이다.
할아버지는 웃으시면서도
그 부끄러움과 난처함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 이게 복수지.’
엄마는 지금도 그 얘기만 나오면 말한다.
“느그 할배 아들만 좋다고~ 이름 지 줬다 아이가.”
그리고 나는 혼자 떠올린다.
할배가 내 이름은 안 지어줬지만,
나한테 “올래~”라고 하던 그 목소리와
뻘쭘하게 웃던 얼굴은 기억에 남았다.
철학관에서 안 나온 이름인데도,
나는 그 이름이 괜히 더 정들어버렸다.
그리고 아주 가끔,
할아버지의 “올래~”라는 목소리가
내 귀에 맴돈다.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정이,
내 이름보다 더 오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