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의 백수 적응기
23년 12월 1일, 정식적으로 홈프로텍터 (Home Protector 일명 '백수' )가 되었다.
총 4번의 퇴사와 이직을 하면서도 항상 시작점에 서는 일도 끝매듭을 짓는 일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항상 부족한 것 같고, 섣부른 결정인가 싶고, 이 결정이 앞으로의 내 미래를 좌지우지할까 매 순간 겁이 난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된 '휴식기'를 가져본 적이 없다. 항상 쫓기듯이 이직을 했고, 쉼 없이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항상 퇴사가 마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도 '이때다!' 싶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여지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직서를 냈던 것 같다. 바로 '내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 때'
'왜 직장에서 행복을 찾아?'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직장에서의 행복 = 일'이었다. 일을 할 때 힘들다고 투덜거려도 가장 행복했었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끝내면 다음 프로젝트를 쉼 없이 이어가야 하지만 그 삶이 괴로우면서도 해냈다는 성취감과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변태스러운 (?) 아이러니한 감각들을 일깨우면서 그 '맛'에 회사를 다녔다. 그래서 주말이라는 휴식 시간이 주어져도 제안서를 쓰거나 그동안 미뤄둔 업계 구독 뉴스레터를 읽거나 혹은 동료들이 필요로 하는 일에 지원을 해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블로그 콘텐츠를 위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퇴사를 하고 백수를 앞둔 무렵 가족, 친구, 연인의 배려로 인생 처음으로 백수생활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졌다. 그래서 나는 한 달 내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자체 격리 생활을 했다.
진즉에 지워버린 회사 메신저와 더 이상 연락올 일이 없는 거래처들의 독촉 카톡과 문자도 없으니 집안 공기마저 평화롭다 못해 적막하다. 그리고 매일 1만보를 넘기면 토스 걸음수도 줄어들어 이제는 포인트를 받으려면 쓰레기 분리수거라도 나가야 그나마 100보는 채울 수 있다. 매일 노트북과 각종 문서들을 넣기 위해 백팩을 넣고 다니는 가방대신에 그냥 옷 주머니 곳곳에 지갑, 핸드폰, 립스틱만 챙기면 되지만 나갈 일이 없어졌다.
1~3일은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무조건 미뤄둔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그동안 읽지 못한 레터들을 읽거나 밀린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냉장고를 청소하고 모아둔 쓰레기를 버리고 저녁에는 무언가 하루를 날려버린 기분이 들어 술 한 잔 마시고 잠을 청했다.
1주일쯤 지나도 뭘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무조건 아침에 손수 요리해서 밥상을 차리고, 든든하게 먹으면 집 청소를 구석구석 하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고 이력서를 정리했다. 하지만 회사로 다시 돌아갈 용기와 의지가 생기지는 않았다.
2주일쯤 지나니까 그래도 백수 시간을 활용해 가족들과 있는 게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본가에서 지냈지만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서 오래 있다 보면 가족이란 모름지기 조금은 거리가 있어야 편하고 애틋한 법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이내 집으로 복귀했다.
3주일쯤 지나니까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2년 동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했던 브런치에 작가 승인이 한 번에 되었고, 매일매일 하던 블로그가 핫토픽에 선정이 돼서 일일 방문자가 3,000명이 넘었고, 유튜브에 영상 연습용으로 올린 여행 브이로그의 조회수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꾸준히 남겼던 리뷰 덕분에 체험단 활동의 기회도 주어졌고, '이걸 어떻게 하지?' 막막했던 릴스를 하나씩 내가 만들고 있었다.
4주일쯤 지나니까 영상, 마케팅, 브랜딩 분야에 관심이 생겨 일어나면 무조건 침대 맡에 둔 책을 읽고 아침시간을 느긋하게 보내기 시작했다. 마치 한량이 된 기분이었지만 하루하루 해야 할 일만 체크하고, 시간대 별로 어제와 다른 나를 살고 있는 나를 채찍질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아침을 조금 늦게 먹고, 글을 쓰다가 영상 편집을 조금 늦게 할 수 있는 그런 TO DO LIST (해야 할 목록)만 있는 루틴을 계획했다. ** 만약, 모아둔 생활비를 다 쓴다면 대출을 어디까지 받을 수 있을지도 생각했다
퇴사한 이후에 연락을 많이 받았다.
스타트업에서 한 팀을 이끌고 있었으니, 고맙게도 팀원들이 안부를 물으면서 연락이 주로 왔다. 그중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가 '팀장급은 퇴사를 하면 뭘 해요!?'였다.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이었던 스타트업이라서 연차가 가장 많았던 나의 넥스트 플랜 없는 퇴사는 동료들에게 걱정이기도 했지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도 충분했던 것 같다. 일부 동료들은 내가 마치 대기업을 준비하기 위해 혹은 공무원을 준비하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퇴사를 하고 지금 그 '준비 기간'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퇴사는 다른 직장인과 '플랜이 없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저도 백수 생활이 처음이라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중입니다.
- 플랜 없이 퇴사한 스타트업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