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취미는 '집밥하기' 입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by 오흔

살이 엄청 빠졌는데!? 못 알아보겠다. 일이 그렇게 힘든 거야!?


매일매일 보던 동료와 정말 오랜만에 티타임 시간을 갖고 얼굴을 마주 보면서 눈을 맞추고 대화를 했다.

서로 타 부서라서 바쁘다는 핑계로 출퇴근 인사도 못하는 날이 더러 있었는데 아주 오래간만에 여유를 찾고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커피를 받자마자 나의 달라진 행색에 동료는 굉장히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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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20대까지 나는 '통통' 한 체형이었다.


거기에 팔다리에 살이 붙는 체질이고, 하체가 발달한 체형이다 보니 조금만 살이 붙어도 후덕해 보이는 체형이라 나는 항상 몸에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웅크리고 다니진 않았다. 더우면 반바지를 입었고, 대학시절 꾸미고 싶은 마음에 미니스커트도 입어보곤 했다. 그냥 나 스스로 내 몸에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몸무게가 3개월 만에 10kg가 빠지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40kg라는 몸무게에 진입을 했다. 하지만 그만큼 고통이 뒤따랐다. 그 시기에 바쁜 회사일도 한몫을 했지만 헤어짐에 있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 종일 커피만 마시거나 혹은 술로 달랬다. 입맛은 더더욱 잃고 몸은 점점 쇠약 그 자체였다. 언젠가 샤워를 하고 몸을 봤는데 피부 껍질이 하얗게 일어나서 바디로션을 발랐더니 화끈거렸다. 심지어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이 너무 따갑게 느껴져서 옷을 입는 것도 이불을 덮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강제 다이어트의 결과는 확실했지만 그만큼 몸도 마음도 노쇄해졌다.



아이러니하게 몸은 항상 이유 없이 아팠는데 살 빠진 내 몸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입어보지 못했던 옷들을 막 입기 시작했고, 인생 처음으로 비키니도 입어보았다. 조금이라도 살이 찔까 봐 다이어트 약도 꾸준히 먹으면서 이 몸이 계속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서는 웃었지만 돌아서면 항상 화를 내거나 울거나 감정의 기복도 매우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 나는 자존감이 많이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서른이 넘었는데 일도 사랑도 그 어느 것 하나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무언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부모님을 찾아간다. 온갖 짐이 뒤섞이고 오래된 내 반려견의 부산스러움이 더해진 복작스런 우리 집에 가면 나는 항상 '내가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지? 그거 별거 아니었는데' 라며 잠시 숨을 쉴 수 있다. 3개월 만에 부모님 댁을 찾아가 엄마의 푹 끓인 김치찌개에 한가득 담긴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내 오랜 반려견 별이와 누워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티비를 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아빠와 함께하는 반주상으로 주말을 보냈다. 엄마의 김치찌개가 그리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와 1주일 내내 나는 김치찌개를 해 먹었다. 그리고 물과 술밖에 없는 냉장고를 다시 식재료들로 하나둘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시절에도 자취를 하면서 친구, 후배들에게 닭백숙을 해주거나 해장국을 끓여주었다. 요리를 하고 대접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걸 꽤 오래 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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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의 기록들



나는 다시 칼을 잡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7시가 훌쩍 넘었지만 나는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식재료를 사다가 레시피를 배워서 근사한 파스타도 해 먹었다. 주말에는 꼭 솥밥을 해 먹었다. 솥밥을 위해 제대로 된 솥도 샀다. 가끔 술이 먹고 싶은 날에는 든든한 술안주를 직접 곁들여해 먹었다. 전에는 술과 물 그것이 전부였다. 밥을 해 먹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요구하게 되는지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일단 부엌으로 가서 식재료를 손질하기 위해 칼질을 하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서 굶던 찌던 튀기던 삶던 과정을 지나서 플레이팅을 하고 열심히 먹고 뒤처리를 위한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이 과정에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느 날은 간단한 간장계란밥 대충 ~ 버무려 먹기도 하고, 어느 날은 배달앱으로 간편한 음식을 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하나, 둘 반복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부엌까지 나온 나 자신이 대견하다. 뿌듯하다. 퇴근 후, 힘들어도 밥을 해서 먹는 나 자신이 점점 무언가 큰 일을 해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요즘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밥을 해 먹는 것으로 기분을 다스리곤 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청양고추 팍팍 넣은 로제 떡볶이를 내 취향 것 만들어 먹고, 무언가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혼자서도 멀티쿠커 켜놓고 소고기 한 덩이 크게 구워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몸무게는 내가 걱정한 것 만큼 크게 줄거나 크게 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잘먹는데도 몸은 항상 유지가 되었다. 밥을 먹고서 살짝 나온 배를 보고 있으면 나도 웃음이 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 굉장히 불필요한 것에 집착을 하게 된다. 그것이 나에게는 '몸무게' 였다. 지금은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이 단단해지고 나 자신을 칭찬하는데에 집중을 하고 있다. 매 한 끼를 제대로 해 먹으니 몸도 마음도 천천히 단단해져 갔다.


이제야 엄마가 항상 '밥 먹었니? 힘들면 밥 먹으러 와'라고 나의 밥안부를 묻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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