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밥벌이 회고하기

by 오흔


4번의 퇴사의 이직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회고의 필요성'이다. 백수라는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이 시기가 아니라면 시간을 내어서 할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기도 하다.




회고의 필요성



[회고] 사전적인 의미로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고로 그동안의 밥벌이에 대한 나의 생각, 감정 등을 모조리 정리하는 하루는 필요하다.



이 작업은 나에게 마치 새해 목표로 절약을 하기 위해 가계부를 쓰고자 고정 지출, 변동 지출을 나누기 위해 그동안 쓴 카드 내역서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뼈를 맞는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알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기분.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 미뤄두고만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회고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하고, 기억들이 미화되거나, 당시에 괜찮지 않았던 것들이 괜찮아지기 때문에 잠깐의 휴식 후 반드시 회고는 진행되어야 한다.


항상 이 회고를 통해서 나는 이직 혹은 삶의 방향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비밀정보들을 새롭게 업데이트해왔다. 그래서 나만의 회사 감별법, 회사에서 내 편 만들기, 일잘러로 업무 정리하는 법, 통과되는 보고서 만드는 법, 연봉협상에서 필승하는 전략, 대표님과 1:1로 대화할 키워드, 어색한 동료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법 등등등 다양한 주제들을 개인적으로 소장하며 담아왔다. 소위 우리는 그것을 시간이 지나서 쌓아온 '경험치'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공기관, 소기업, 중소기업, 중견기업 등 다양한 기업과 문화, 동료, 업무를 거치면서 나에게도 정보라는 것이 참 많이 쌓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만했다. 새로운 정보는 늘 추가되기 마련이고, 내가 아는 세상은 끝이 아니었다.


이번 퇴사가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컸다. '그래서 너 무엇 때문에 그만둔 거야?'라고 어쩌다가 만난 지인들이 나의 퇴사 사유를 묻는다면 나의 답은 '짜쳐서 퇴사했어'이다.


[짜치다] 는 경상도 방언이기도 하며, 생활이 쪼들리다는 의미에서 차츰 변질되어 가끔은 수준이 너무 낮거나 형편 없는 일을 하는 것을 두고 짜친 일을 한다고 한다.






블로그에 기록된 대부분의 일상 글들에 적힌 키워드는 [힘들다]였다.


남자친구는 너무 나에게 감정을 블로그에 드러내지 말라고 했지만 일상 리뷰 블로그에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마저도 기록되지 않으면 나 조차도 그 시기의 내 감정상태를 잊어버릴 것 같아 솔직한 감정을 담은 일상 기록은 계속 연재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속들이 무엇이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하나하나 나열하는 일이 참으로 '짜치는 일이다'.

마치 (구)남친을 이야기하며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하나하나 나열을 하자면 그 끝에서 드는 생각은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으로 나에게 돌아온다.


'어떻게 회사에 대한 회고를 하다가 '나'라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싶지만 결국 회고의 본질은 더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내가 과거에 느꼈던 모든 감정과 생각이 매듭이 지어져야 그다음의 새로운 매듭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매듭을 짓다 보면 '아!' 하고 머리를 탁 때리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온전히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의 밥벌이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루 종일 그동안 나의 밥벌이에 대한 생각, 감정, 에피소드 등을 정리하고 나니 마치 대서사시 한 편을 써 내려간 느낌이었다. 나도 많이 반성을 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지점도 있었다. 물론, 동료들에게 배웠던 점도 있었고 더 나아가 앞으로 나는 어떤 커리어를 갖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있었다. 회고 작업이 끝난 후, 각 플랫폼에 흩어져 있는 나의 이력서들을 모두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재직 중'이 아니라 '퇴사'로 변경하고, 그동안 했었던 프로젝트 파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포트폴리오로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직무, 회사에서 채용을 하고 있는지도 틈틈이 살펴보고 스크랩해 두었다. '퇴사'로 상태를 변경하자 (구) 회사에 대한 리뷰를 남겨달라는 플랫폼 알림이 떴는데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는 의미로 나는 알람 자체를 꺼버렸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추억'이 될 수는 없다. 좋다면 추억, 좋지 않다면 경험. 모든 것을 분류하는 기준은 바로 내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 마음을 달레고 나면 결국엔 현실을 봐야 한다. 회고의 본질은 결국 나를 위함이다. 한 바탕 회고와 정리의 시간을 가진 후, 나는 나를 위해서 두 번째 퇴사 파티를 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와인을 한 병 샀고, 나를 위해서 아껴둔 소고기 한 점을 구웠다.


고생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보자. 새롭게.


> 회고를 하는 순간순간 많이 아프다. 뼈가 때린다. 그러니 꼭 회고가 끝난 나를 위로하고 칭찬하기 위한 보상을 마련해 두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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