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아빠탐구생활
아빠는 아직도 밥 값을 낼 수 있고, 너희한테 용돈도 줄 수 있단다
백수 생활에 접어들면서 내가 꼭 하자고 다짐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아빠와 시간 보내기'였다.
백수 생활을 앞두고 지인들과 부산 여행을 떠났었다. 그때 우연히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 주제가 흘러갔는데 놀랍게도 우리 모두 똑같은 고충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드니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일을 하느라 정신없는 엄마 그리고 그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감성적인 아빠. 나는 비단 우리 집에서만 겪는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아빠와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아빠는 올해 진정한 60세가 되었다.
IMF를 30대 후반에 겪고 직장을 나와서 엄마의 뜻대로 식당, 옷가게, 교육 사업 등 다양한 자영업 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 우리 가족의 권유로 특수경비원으로 취직을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바쁜 가족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빠의 무기력함을 우리는 답답함으로 마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원치 않는 아빠에게 '무슨 일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라며 배움이든, 여행이든 무엇이든 다 지원해 주겠노라고 아빠를 설득했던 우리였다. 다행히도 아빠는 4년 만에 경비생활에 적응을 했고, 나름 동네에서 친한 사람들도 생겨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아빠만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해가고 있다.
그런 아빠의 유일한 낙은 교대 근무 중에서 주간근무가 끝나는 퇴근길에 온갖 음식과 술을 사 와서 가족들과 텔레비전 앞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저녁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식들은 클수록 만나기가 어렵고, 같이 나이 들어가는 부인은 새로운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으니 집에서 항상 반주로 저녁을 보내는 건 아빠와 우리 집의 오래된 반려견 '별'이다.
그런 아빠가 안타깝고, 걱정이 되면서도 나 역시도 정작 내 앞에 놓인 일들과 밥벌이에 집중되다 보니 집에서 겨우 4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집을 가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다시 취업을 해서 바빠지기 전에 용기를 내어 시간을 내어 백수 생활동안 아빠와 함께 생활을 하고, 오래도록 머무르고자 집으로 들어섰다.
[탐구 1] 아빠는 '요리'를 할 줄 안다
반주를 좋아하는 아빠는 항상 나와 동생이 오는 날이면 유독 더 맛있는 안주를 사 온다. 집에 있는 나에게 '오늘 뭐 먹고 싶어!? 뭐 사갈까?' 라며 들뜬 아빠의 질문에 나는 '아무거나'라고 답했다. 아빠는 수입산 차돌박이, 숙주 그리고 술을 사 오더니 주방으로 들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얼 넣었는지 알 수 없지만 먹을만한 아빠의 요리는 그저 신기하다. 심지어 아빠는 주방에 들어가는 걸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작은 집에 엄마와 아빠, 둘이 남게 되니 자연스럽게 밥을 짓는 방법도 요리를 하는 방법도 양념을 쓰는 법도 혼자 배우게 된 것이었다. '아빠, 요리도 할 줄 알아?!' 아빠의 투박하지만 정성 들인 요리는 단짠단짠 술안주 그 자체였다.
나는 요즘 아빠의 모든 일상들을 사진 대신에 영상으로 담곤 한다. 그때마다 아빠는 '도대체 뭘 찍는 거야?' 라며 핀잔을 주면서 세팅을 맞춰주고, 잘 나올 수 있도록 각도도 잡아주곤 한다. 그리고는 제대로 찍으라며 나에게 한 소리를 한다.
[탐구 2] 아빠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첫 잔은 항상 '소맥'이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에서 아빠는 맥주병과 소주병을 함께 가져온다. 그리고 나에게는 묻는다. '소맥?'
아빠표 소맥은 소주 4 : 맥주 6이다. 심지어 섞어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나와 잔을 부딪히면 아빠의 저녁 반주는 시작이다. 아빠와 이렇게 술을 함께 마시는 일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에 아빠는 '네가 무슨 술이야! 이거나 마셔' 라며 나한테 음료수를 주거나 아주 작은 뚱땡이 캔맥주를 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주류 취향도 물어본다. '맥주? 소주? 소맥? 뭐 마실래?'
[탐구 3] 아빠는 '외모 지상주의' 다.
내가 머문 지 4일 차 되었을 때, 아빠는 어김없이 나와의 저녁 반주상을 차려주셨다. 아빠의 요리가 꽤 늘기도 했지만, 아빠를 대신해서 자취경력 10년 차에 나는 소고기뭇국과 잡채, 버섯볶음 등 다양한 안주를 차렸다.
소맥으로 시작한 아빠는 소주로 바꾸더니 나에게 갑자기 남자친구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그동안 꽤 궁금한 눈치였던 것 같다. 아빠는 20대 중반 처음으로 입밖에 꺼낸 '남자친구가 있어!'라는 이야기에 세상 무너진 사람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술만 들이켰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서른을 넘고, 아빠의 주변에는 벌써 손주를 본 사람들도 생기니 이제는 조금 내려놓은 (?) 것 같다.
늘 아빠는 '공무원' 남자친구를 바랐지만,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랴... 현실과 이상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경비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 덕분에 알게 된 것 같다. 이런저런 아빠의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아빠는 나에게 처음으로 남자친구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있잖아, 그 남자 지갑에 돈이 없어도 네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에 아빠는 '잘생겼냐?'라고 물어봤다. 나는 그 물음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뒤이어 아빠는 '아빠는 눈이 높아, 그래서 너희 엄마랑 결혼해서 너네를 낳았잖냐..'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웃겼지만 따스했다. 생각보다 아빠는 동생의 여자친구도 그렇고 내 남자친구도 그렇고 외모를 굉장히 따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탐구 4] 아빠는 아직 '슈퍼맨'이고 싶다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얼마 남지 않은 백수생활의 끝을 보내고 있는 동생이 찾아왔다. 동생은 나보다도 지독한 워커홀릭이라 퇴사 후 빠르게 취업준비를 하면서 원하는 회사에 합격 소식을 받고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온 가족이 아주 어렵게 모인 만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외식을 할 적마다 우리 남매만의 레퍼토리가 있다. 바로 아빠를 잘 잡아두고 계산을 우리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제 자식들이 다 커서 밥도 사주니 뿌듯하다고 하지만 아빠는 무언가 씁쓸해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을 마칠 때쯤 되니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보다 먼저 계산을 하곤 돌아섰다. 나는 아빠에게 팔짱을 끼며 '아버지!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아빠는 오랜만에 웃어 보였다.
성인이 되고 우리 남매는 부모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대신 대출을 받아들이거나, 급전을 드리거나, 용돈을 드리거나, 좋은 음식점에 모시고 가서 식사를 대접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사다 드리거나 등등. 그럴 때마다 엄마는 좋아하지만 아빠는 늘 씁쓸해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늘 말한다. '아직 아빠도 너네한테 밥 사주고, 용돈 줄 수 있다. 그러니 괜히 돈 쓰지 마라' 그래서 나는 집에 머무는 동안 아빠를 참 많이도 찾았다. '아빠, 밥 차려주세요!' , '아빠! 물이 안 따뜻해요!' ,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 '아빠, 이것 좀 도와줘요!' 등등. 아빠는 귀찮아했지만 그 귀찮음에 항상 미소가 있었다는 걸 이제야 보게 되었다.
[탐구 5] 아빠는 '얼리어답터' 다.
아빠에게 새로운 취미가 바로 '쇼핑'이다. 대부분 중국제품의 전자기기가 대부분이다. 스마트워치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생소한 물건들이 속속들이 배송되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꽤 어린아이처럼 신나 한다. 그래서 아빠에게 제대로 된 스마트워치를 사다 드렸는데, 매일매일 열심히 충전하면서 심박수 / 걸음수 / 스트레스 등을 매일 시계를 보면서 연구한다. 그래놓고도 중장년을 위한 쇼핑 매거진을 구독해서 항상 '어디 좋은 상품이 없나?' 하며 매일 아침 들여다본다.
10일, 아주 짧은 시간. 나는 아빠와 함께 했다. 아빠와 거의 매일 술친구가 되어 저녁상을 함께 차리고 함께 나누었다. 나는 아주 무뚝뚝한 딸이다. 아빠에게 그저 '끼니 안부'만 묻는 딸. 아빠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도 많았고, 알고 있으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백수 생활에 접어든 우리 남매가 집으로 찾아왔을 때도 '요즘 애들은 그게 문제야. 더 다녀야지!' 하며 핀잔을 주어도 내가 좋아하는 아빠표 소맥을 만들어주었고, 동생이 좋아하는 족발을 시켜주며 지갑에 용돈을 넣어주었다. 공무원이 되길 바랐던 우리 남매가 각자 기획자, 개발자의 길로 갈 때에도 아빠는 많이 실망한 눈치였지만 아직도 내가 첫 회사에 다녔을 때 드렸던 명함과 증명사진을 지갑 한 켠에 고이 넣고 다니는 걸 보고 코 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백수 생활이 끝나면 다시금 밥벌이 때문에 일상에 치여 우리는 부모님의 전화가 불필요하고 귀찮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 죄책감은 항상 용돈으로 혹은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대체가 되고는 한다. 본가에 오면 들리는 잔소리에 다시금 내 좁은 원룸이 생각나겠지만, 그래도 머물다 보면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지난날의 부모님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딸은 아빠의 태양이야] 내가 3살부터 아빠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다.
어느 순간 아빠도 이 질문을 하지 않게 되고, 어느 순간 나도 이 문장을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금 잊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빠의 태양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아빠의 태양으로 더 단단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