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창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어서
14,000자를 채워가는 과정
신춘문예 제출을 못한 채 한 해를 마무리했다. 작년 1월부터 다짐한 가장 큰 목표였다. 소설가의 수업을 받고 책에 파뭍혀 살다 보니 9달 정도 만에 14,000자의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수업을 받으며 작가님은 자전적인 소설을 권유하셨고 나는 이유를 물었다. 작가님은 이유를 말해주면 글이 옅어질 것 같다며 그냥 하나의 제안으로만 들어달라 했다. 딱히 글감을 고르지 못한 나에겐 좋은 제안이었다. 그렇기에 나의 첫 투고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 되었다. 1-2달 정도는 어떻게 써도 글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어릴 적 사진과 물건을 뒤져보다 태아나 나의 흔적이 처음으로 남아있던 성장앨범을 펼쳤다. 맨 앞장, 나의 사진이 붙어있다.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써야 할지 분명하게 들었다.
딸이라 실망했다
뭐 더한 말이 필요했을까. 가족에게 버림받고 싶었다. 나 역시 가족을 버리고 싶었다. 남자만 보이는 집에서 여자가 태어난 것은 꽤나 불행한 일이었다. 처음엔 그저 서럽고 슬펐다. 그러다 성인이 되니 그것이 분노로 바뀌었다. 흔히 발작 버튼이라 불리는 어떠한 것이 술을 마시고 한 번 눌릴 때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가족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저 오빠를 시기하는 자격지심 덩어리가 되었다. 어쩌나 내 마음은 시원한걸. 터트리고 싶었나 보다. 나는 모든 혼자서 이겨냈다. 내 의지는 아니었으나 덕분에 도움받지 않고 혼자 해내는 거 잘하는 사람이 되긴 했다. 그래도 15년간 내 속은 잔뜩 곪아갔다.
제목을 찾습니다
곪아가던 속은 썩어 문드러져 악취 나는 마음이 되었다. 그냥 꾹 안고 살았다. 그 냄새에도 익숙해졌으니. 그러다 더 한 악취가 나면 그것에 또 익숙해졌다. 그러니 굳이 그 향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크게 일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 향을 깨웠고 나는 모든 걸 게워 내고 싶어졌다. 그게 이번 투고였다. 나는 이번 원고에 썩은 모든 것을 뱉어버리기로 다짐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없애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선명한 정신으로 더 외로워졌다. 그렇게 이 원고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제목을 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12월 신춘문예 공모가 끝났다. 막상 나의 치부를 누군가 꼼꼼히 읽을 생각을 하니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더러움을 근사한 제목으로라도 포장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내가 이렇다. 그러니 원고를 담은 각대 봉투가 서랍속에서 나오질 못하겠지. 담담하게 창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슬픔과 분노에 익숙해지지 않고 싶다. 더러운 마음을 삼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뱉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에는 이름 없는 이 원고의 제목을 정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하지만 찾아낼 것이다. 내 서랍 속에서 또다시 썩어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