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거나 내게 상처가 되는 기억들은 점점 되살아나기는커녕 진짜 그런 일이 있었던 건지 의심하게 만든다. 나는 그랬다. 누군가 내게 상처 입힌 일들은 쉽게 잊혀지곤 했다. 없었으면 좋았을 기억이라서 그런 걸까. 너무나도 친했던 친구와 갈라서게 된 이유나 내가 왕따를 당하던 시절의 기억 같은 건 내게 남아있지 않다. 그저 그랬었다는 사실만이 상처가 되어 기억에 남을 뿐.
그런가 하면 생각할수록 희미하면서도 선명하게 보여지는 기억들도 있다. 나의 경우, 행복했던 일들이 그러했다. 어린 시절 아빠와의 기억 조각이라던가, 혹은 당신과 함께 했던 그 몇몇 장면들, 고 3 울며 뛰쳐나가는 나를 뒤쫓아와 손에 쥐어주던 할머니의 3만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 기억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비슷하게나마 존재했을 시간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아주 흐릿하면서도 또 또렷하다. 잊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기억하고, 기억할수록 좋았던 부분이 증폭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잊고 있었다. 사람은 백 번 잘해줘도 한 번 못해주면 그 서운했던 것들만 마음에 담는 못된 동물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왜 나라는 사람은 백 번 서운하게 해도 한 번 잘해준 그 기억에만 매달리는 걸까. 기억이라 함은 과거의일을 흑백 사진처럼 저장하는 것이 분명한데 방금 전에 일어났던 것처럼 생생하게, 혹은 있지도 않았던 일처럼사라져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것도 모자라 나의 희망사항을 가끔은 기억으로 탈바꿈 해 저장해 놓거나 가장 마음속에 되새기고 잊지 말아야 할 상처 같은 것들을 자기 마음대로 지워버린다.
그래서 자꾸 당신과의 기억을 헷갈려 하고,
또 마땅히 화를 내야 함에도 자꾸 웃어주게 만들어 버린다. 내가 그 기억들의 주인이 확실한데, 기억들은 아주 나쁘게도 매번 나를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