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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Sep 30. 2015

ERMAN

비 내리는 콘야의 밤을 지나갈 무렵이었다. 잠도 오지 않고 그저 비가 좋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창 밖으로 바라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앞 자리에 앉은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과자 먹을래?"

그의 옆자리로 옮겨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시작된 인연이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했던 그였기에 번역기를 사용해서 더듬더듬. 그는 흡사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를 닮았다. 그러니까, 잘생겼다. 나는 비가 좋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내 내 손을 잡아 끌고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앞자리로 향했다. 큰 창으로 비 오는 거리가 선명히 보이는 콘야를 우리는 같이 바라보다가 언제쯤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는 나를 깨우며 차들의 불빛이 심하니 다시 뒷자리로 가자고 했고, 또 뒷자리에서 그는 자꾸 떨어지는 내 머리를 기대도 된다며 자신의 어깨를 몇 번 손바닥으로 쳤고, 내가 자는 모습이 너무나도 달콤하다는 말로 잠시 나를 설레게 했다.


Erman, 그는 내가 터키에서 보낸 시간들 중 절대 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우정은 파묵칼레에서도, 또 다시 돌아간 카파도키아에서도, 이스탄불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고, 내가 닭이나 소, 강아지, 고양이같은 동물을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각종 동물들이 지나갈 때마다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가 내게 이별 선물이라고 건넨 것은 레알마드리드 머그컵일 정도로그 역시 여느 터키인처럼 그 또한 축구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열혈 청년이었다. 한번은 같이 저녁을 먹는데 조금 비싼 가격이기도 했고, 또 내가 그보다 누나였기에 내가 계산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그는 남자가 내는 거라며 불같이 화를 냈고, 삼십 분 동안 나는 그를 풀어주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는 풀어주는 중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의 누나가 산다는 이스탄불의 어느 동네로 함께 놀러 가 소박한 시장을 구경하고, 한 손에는 자신의 조카를 안고, 또 한 손에는 나의 짐을 들어주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한번은 형의 약혼식에 나를 초대하여 그들의 문화를 알려주었는데, 이슬람 식의 약혼식에서는 붉은 끈을 나누어 갖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그럼 그 사랑이 영원토록 지속된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형의 부인은 내게 그 끈을 선물하며 나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환히 웃어주기도 했다. 유명인사가 된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머무는 거라는 그들의 방식대로 나는 그와 떨어져 그의 가족과 홀로 친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이스탄불에 관광 목적으로 혼자 떨어져 관광지가 아닌 실제 터키인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한 여행자는 몇 없을 것이고, 그 몇 없을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 나는 그로 인해 관광으로 도배된 곳이 아닌 그 나라 사람들의 삶에 잠시라도 서 있을 수 있었다.


내 터키여행이 누구보다 따뜻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고, 그 중 Erman은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다시 다칠 준비를 하고 한국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다쳤던 것들을 치유하고 한국으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를 그 어느 중간 즈음에 서 있던 나에게, 또 다시 그 대답 없음을 견뎌야 할 준비를 해야 했던 나에게, 좌절과 희망 그 어디쯤을 반복하며 긴 기다림과 싸워야 했던 나에게, 그는 가장 달콤하고 든든한 존재였다.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아타튀르크 공항 스타벅스에서 우리는 라떼 두 잔을 시켜놓고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더듬거렸고, 또 심각하게 울먹였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우리는 서로에게 어느 날 갑자기 받게 되는 깜짝 선물 같은 것이었고, 또 두 번은 없을 인연이었다. 그 헤어짐이 어찌나 슬프던지, 울지 말라고 화내던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룩 흐른다. 울지 말라 그래 놓고 니가 울면 어떻게 하냐는 나의 투정에 비로소 우리는 웃으며 이별할 수 있었다. 


Erman은 터키 여성은 기가 세서 싫고, 러시아 여성이나 영국 여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때를 대비해, 또 나를 위해, 영어를 배우겠다고도 했었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 그에게는 터키인 여자친구가 생겼고, 이제는 제법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 가끔 터키의 그 비 내음이 코끝을 스친 것 같다고 생각이 들때면, 아직도 나는 그 날의 내가, 그리고 그 때의 Erman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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