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을까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다고 했다. 연애라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어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생채기는 훗날 그 사람의 흔적이 되어 아련하게 추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겠지. 상처 없이 사랑을 얻기를 바라는 건 굉장한 욕심이며 이루어지지 않을, 그야말로 몽상이다. 상처 받을까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랑 자체가 두려워 상처받기 싫은 것뿐이다.
언젠가는 서로가 변할 것이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이야 이토록 위대하고 반짝이는 사랑일 테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변색되기 마련이다. 누가, 혹은 뭐가 변한 게 아니다. 그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는 만큼 눈에 밟히는 단점들, 이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의 오류, 이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사랑이 아니며 시간에 의해 정으로 탈바꿈 한 감정이라고 결론짓는 오해들이 결국 사랑을 변질되게 만드는 것이다.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들, 혹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마음들이 튀어나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과정에서 내리는 추론일 뿐이다.
헤어짐이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못한다고 했다. 모든 끝은 예고가 없다. 그러니까 끝이라는 건, 제 이름은 끝인데요, 이제 내일쯤 도착할 것 같으니 조심하세요, 하고 오는 게 아니다. 당신은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도 아니다. 내일 같은 거, 백 날 천 날 생각해봤자 당신의 뜻대로 절대 되지 않는다. 언젠가 올 끝이 두려워 그 사람을 마음에 담을 수 없다는 당신, 이미 마음에 담았으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당신, 버려지는 것이 아닌 당신이 버릴 수도 있는 거였고, 끝이 어떠한 모양으로 당신 앞에 얼굴을 내비칠지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 아는가. 누군가를 마음에 담게 되면 누구나가 상처가 두렵고 변할까 봐 불안해지며 끝이 무서워진다는 걸. 당신이 마음에 담았을 그녀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그러니까 당신이 그렇게 망설이고 주춤거렸던 사랑들에 용기 있게 뛰어들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그녀와의 끝을 감내하여 성숙을 한 움큼 손에 쥔 채 사랑이 무어라고 조금쯤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끝 덕분에 그녀와 여전히 사랑하는 해피엔딩의 주인공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