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시아에 머무는 동안 끊임없이 날 유혹했던 석굴분묘에 오르던 날이었다.
아득하게 넘어질 뻔한 순간에 내게 내밀어 진 손, 그리고 내가 잡은 그 손을 계기로
그와 나는 몇 시간 동안 우리가 되었다.
그의 원래 고향은 터키의 남부 어딘가 였고 그는 아마시아에 파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군인이었다.
그 역시 석굴분묘에 매료되어 첫 휴가를 이 곳에 쓴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나는 음료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아마시아 강 앞의 작은 차이집에서 차이를 마셨다.
그는 영어를 못했기에 우리는 구글 번역기와 내가 가져온 터키어 회화 책을 통해 띄엄띄엄 대화를 나눴다.
그는 몇 번이나 내게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나 역시 터키어를 몰라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웃던 오후 네 시.
그의 복귀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나를 내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는 작은 쪽지에 자신의 이메일 주소와 집 주소를 적어주고는
함께 찍은 사진과 자신의 사진들을 꼭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했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나는그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사진을 보내달라는 부탁 또한 잊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분명히 그에게 반드시 사진을 보내줘야지,
그래서 내가 외국인과 사진 찍은 걸 자랑하는 것처럼 그도 외국인과 사진 찍은 걸 자랑하게 해줘야지,
라고 굳게 마음 먹었었다. 분명했다. 그런데 몇 달 새 까맣게 잊은 거다.
한번도 외국인을 보지 못했다던 자신의 엄마에게 사진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수줍은 고백이 떠올랐다.
그는 아마도 내 연락을 기다렸을 것이다.
순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이상해졌다.
기다림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 고통을 선물하다니.
누군가는 날 기다리게 만들어 놓고 나는 당신에게서 대답을 바라다니.
아마도 내가 그를 기다리게 했기에 당신 역시 나를 조금 더 기다리게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내가 너무 미워졌다.
순수하게 그를 기다리게 했다는 미안함 보다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게 한 대가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그의 기다림을 끝낸다면 나 역시 이 긴 기다림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내 마음의 보상심리가 한없이 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