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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Sep 30. 2015

Damon

케냐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물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내게는 힘든 시간임이 분명했다. 한국에서 떨어져 지내 보면 아마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혹은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참 많은 어느 날들에 나는 당신이 무척이나, 그리고 또 자주 보고 싶었다. 나는 그를 데이먼이라고 부르곤 했다. 미드 속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데이먼이었기에 내 맘대로 지어 부르던 별명이었다.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나에 비해 그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어서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참 많이 시렸고, 곧 뒤따라 오는 그의 위로를 받으면 또 참 달콤했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가장 뜨거울 때 그 온도 그대로 그리워 지는 그런 존재였다. 그와 함께 있는 게, 같은 추억을 공유할 친구가 되어간다는 게 나는 참 좋았다. 이해할 수 없어서 그와 내가 계속 투닥거렸던 몇 가지의 주제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왜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그리고 그 때의 내가 틀렸었다는 것도.


그와 한참 친해지고 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도 더 감성이 짙은 사람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은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것들을 염원하는 사람. 그는 캐나다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마쳤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해외 생활에서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이질감, 그리고 한국의 친구들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모습들을 지켜봐야 했던 서운함들을 다 견뎌온 그가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내게는 처음인 해외 생활이 감당하기 어려워 질 때마다 그가 더욱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넓고 깊은 우물을 가진 친구다. 나는 그의 지식이나 경험들을 참 부러워했었고, 내가 그를 부러워할 때마다 그는 말했었다.

"부럽긴 뭐가, 나도너랑 똑 같은 사람 이고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은 넘쳐 흘러. 난 아직도 부족해. "

내가 사실 그에게 가장 부러웠던 건 그의 경험이나 지식이 아니었다. 내 세계에서는 그가 가장 대단한 사람인데, 그의 세계에서는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동경하고 있다는 거였음을 아마 그는 몰랐을 것이다.


문득 그와 함께 술잔을 부딪히며 날 무던히도 성장시켰던 그 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져 연락을 했다. 타이밍도 절묘하게 그는 대학 졸업 후 면접을 봐가며 탈락의 쓴 맛을 보고 있을 때였다. 처음이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이 넘쳤던 그였는데, 처음으로 그가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위로하는 법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못난 사람이었고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에 무척이나 당황하여 그때의 나는 뻔하디 뻔한 몇 글자의 위로로 대신했었다.  내게는 아주 많이 소중한 그에게 내가 삼켰던 몇 마디,  그리고 앞으로의 그가 꼭 새겨줬으면 좋겠는 몇 마디.


너의 우물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최고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우물에서는니가 최고니까, 

니가 더 대단한 사람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마음은 내가 널 부러워하는 마음과 같으니까,

넌 내가 널 부러워할 때마다 그저 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었듯이

니가 부러워하는 그들도 사실 별 볼일 없을 거니까,

부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깊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만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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