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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Sep 30. 2015

요리사 조세팟

조세팟은 요리사다. 그것도 한국음식을 만들어주는 요리사. 내가 케냐에 있는 동안 나와 함께 지내며 나의 음식들을 책임졌다. 그는 참 고지식했다. 대화를 할 때마다 나는 그를 외골수 라고 정의하곤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침에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를 먹겠다고 얘기한 후 한 시간 쯤 지나 돼지고기가 아니라 그냥 치킨을 먹겠다고 메뉴를 바꾸면 준비하고 있던 도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도대체 돼지고기에서 치킨으로 메뉴를 바꿔야 하는지 자기가 납득할 만큼의 설명을 들어야만 그때서야 오케이를 하곤 했다. 나는 입이 짧았고 그는 음식 남기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아프리카에 와서 내가 음식을 남긴다는 건 죄악처럼 느껴졌으므로 나 역시 남기기 싫어 그에게 조금의 양을 요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래도 음식은 번번히 남겨지기에 충분한 양으로 요리되었다. 그가 해주는 한국 음식은 어쩔 땐 물을 막 들이부어야 할 만큼 짰고, 또 어쩔 때는 참을 수 없이 싱거웠다. 나는 매번 조세팟에게 제발 간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그 외에도 조세팟과 나 사이에는 여러 가지의 갈등들이 존재했고 갈등을 풀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말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한국사람에게 한국어로 이야기해도 갈등이 풀릴까 말깐데 영어로 그 갈등을 푼다는 게 무리였을 수도.


그래도 그는 자신이 요리사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마치 그의 겉옷 위에 '나는 요리사입니다.' 라는 명찰이라도 달려있는 것처럼. 그런 조세팟을 보면서 나는 가끔 부러웠던 것 같다. 나에게는 그런 무언가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처럼 내 겉옷 위에 달려있는 명찰은 그냥 나였다.  내가 자신 있게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걸 잘 해 하고 내세울 만 한 게 없었던 거다.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일이고 즐거워하는 일이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매번 포기하고 그만두고 마음속에 곱게 모셔놓기 일쑤였다. 


글쓰기가 내겐 그랬다.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한번도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일 뿐이지,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내세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 같은 게 무슨 글을 쓰냐 그냥 돈이나 벌어라 할 까봐, 너 정도 쓰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할 까봐, 그런 사람들의 질타가 무서워서 나는 내 꿈을 정말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던 거다. 다른 건 그렇게 일단 부딪히고 보면서, 다른 문제들은 겪어봐야 아는 거라고 하면서, 남들이 힘든 일로 내게 조언을 구할 때면 마음이 가는 대로 가면 되는 거야, 일단 해봐야 알지 라고 얘기했으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설레는 일은 글 쓰는일 하나 뿐인데 나는 늘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숨기고, 감추고, 꼭 말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조세팟이 한식 요리사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드는 한국 음식이 완벽하지 않듯이 글을 잘 쓰건 못 쓰건, 내 글이 완벽하지 않건 그건 상관 없었다. 꿈을 현실로 이르게 하는 첫 번째 발걸음은 “되기” 였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까 라는생각에 도달했을 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보며 안하무인, 외골수, 이기주의자 등의 온갖 단점들을 갖다 붙여도 내 겉옷의 명찰은 글쟁이 라고 반짝 빛날 수 있는 그 날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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