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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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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Sep 30. 2015

반가운 이름

토이마켓을 갔다. 구호 물품들 혹은 누군가가 의류함 같은 곳에 재활용을 목적으로 버린 물품들이 모두 모이는 곳, 그리고 그 물품들이 싼 가격으로 거래가 되는 곳이다. 케냐 사람들은 이 곳 토이마켓에서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가방을 산다. 처음엔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토이마켓에 동행했던 케냐 친구에게 말했다. 이 물건들은 다 누군가가 쓸 필요가 없어서 버린 것들인데, 혹은 기부한 것들인데, 왜 여기에서 돈으로 거래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토이마켓은 그들만의 질서였고, 상권이었다. 그 돈들이 다 다른 곳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케냐 경제에 이바지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게 그거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버린 것들은 지구 반 바퀴쯤을 돌아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 된다. 아주 자주 한글을 마주한다. 분홍 유치원이라고 쓰여진 유치원 가방이라던가 축구 유니폼 이라던가, 혹은 누군가의 탄생일이 적혀있는 수건들까지. 토이마켓을 거닐다가 우연히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다. 한 때, 아니 사실 아직도 내게 많이 소중한 그녀의 이름을 보자, 싸워 연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는 그녀에게 보여주려 사진을 찍었다.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보여주려던 건 아니었는데 낯선 곳에서 만나는 한글도, 그리고 익숙한 그녀의 이름도, 빛 바랜 색으로 번진다.


자신의 마음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이가 없어서, 벽에게 털어놓고, 강아지에게 이야기하던 친구였다. 곧 나는 그녀의 벽이 되고 강아지가 되어 그녀의 진심을 들을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되었었다. 사건의 발단은 그랬다. 그녀에게 그녀만큼 소중한 나의 사람을 소개 시켜 주는 일,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서로 소개시켜 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녀가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게, 이미 상처로 난잡해진 그의 마음을 또 긁어낸다는 게 나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애사 일 뿐인데, 내게 소중한 두 사람이라는 이유로 내가 너무 깊숙이 관여했던 거다. 그러니 당연히 그녀에게서 나를 이유로 한 잦은 이별 선언이 나올 수 밖에 없었겠지, 또한 그녀는 비겁할지라도 직면하기 어려운 일 앞에서는 숨기도 참 잘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자존심 때문에, 또 그녀가 정말 나쁜 여자 같다는 생각에 먼저 절교를 선언했다. 그녀도, 나도 아마 우리가 공유했던 우정 보다는 서로의 자존심이, 결백함이 중요했던가 보다. 내가 버린 그녀는 지금쯤 다른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친구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녀는 유쾌한 사람이니까. 지구 반 바퀴쯤을 돌아 다시 우연히 우리가 마주칠 수 있다면, 미안하다는 말 대신 잘 지냈냐고 해야겠다. 버려진 내가 다시 그녀에게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잘 지냈냐고 활짝 웃는 게 조금 더 우리다울 것이다.그녀가 좋아하던 처음처럼을 한 손에 들고 미쳐 뚜껑을 닫지 않은 채 흔드는 바람에 소주로 샤워하며 깔깔거리던 그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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