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모래시계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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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의 해변


나의 용기는

구멍 난 모래시계에 든 모래처럼

한쪽으로 쏠려버리면

한 톨도 남지 않아 버려


그래서 생각했어

모래사장에 가면

용기가 있을까?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래알을 골라 담으면

새로운 용기가

조금쯤 쏟아나올까?


작은 용기만 있어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데

그 작은 용기로

문을 열 수도 있다는데


너에게 다가가려면

모래사장의 모래를

다 써도 모자랄 것 같아


나의 용기

나의 모래알

나의 해변

나의 모래

나의 용기


파도가 거센

내 해변의 모래는

자꾸만

쓸려 내려가


나는 오늘도

해변에 앉아

조용히

반짝이는 모래알을 고르고 있어


예쁜 용기만 담아서

너에게 보낼 수 있기를




작가 노트 | 모래시계의 해변

해변에서 모래를 한 줌 쥐었다가 손을 펴면 손금 사이에 모래가 남습니다. 저는 손바닥을 햇빛에 비춰보며 황홀한 감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 이후로 모래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지 같은 알갱이지만 남은 것들을 빛에 비춰보면 반짝일 것이라고.

그리고 다들 각자의 모래시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모래의 양은 각기 다르고, 흐르는 속도도 다릅니다. 어떤 날은 모래시계의 홈이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합니다. 시간은 자꾸만 나를 깎아내는 쪽으로 흐릅니다.

내 모래시계에는 얼마만큼의 모래가 남았을까요? 얼마만큼의 모래를 써야, 오늘의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오후 여섯시의 고양이’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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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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