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c 해방촌에서 찾는 자유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는 HBC. 이태원 해방촌(Haebangchon)이다. 친구가 한번도 안 가봤다는 나의 말을 듣고는 데려가주었다. 그 곳은.. 정말 쿨한 동네였다. 힙힙힙 힙스러움이 온 곳에서 뿜어져나왔다. 모든 것이 힙스러워서 심지어 런닝구만 입은 대머리 할아버지도 힙해보일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쿨하고 스타일리쉬하고 자유로워보였다. 나도 그들처럼 쿨해지고 싶었다.
몇 년 전 써놓았던 일기를 우연히 보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엄마가 24살 생일선물로 사주었던 샤넬 모양의 금팔찌를 빼버렸다. 이걸 끼고 있으면 이슬아 작가의 쿨함을 닮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지금 내 팔목엔 샤넬 모양의 금팔찌가 없다. 이 때 이후로 끼지 않았다.
그들의 쿨함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내가 부러워하는 그들의 쿨함이란 무엇일까?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건 주관이 뚜렷함에서 나오는 자유로움이다.
이슬아 작가가 쓴 책에서 이슬아의 고모들이 “슬아는 참 자유롭게 살아가는구나”라는 말에 그녀는 아직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과 임신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인해 하나도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남아있는 대출금이 있으므로 이를 갚기 위해 매일 글을 쓴다며 스스로를 생계형 작가라고 부르는 것도,
임신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섹스는 자유롭게 즐기고 싶다며 루프 시술을 받은 것도 당당히 밝히는 것을 보며 그녀의 뚜렷한 주관을 엿볼 수 있어 부러웠다.
내가 해방촌에서 본 사람들도 직업이 궁금하게 만드는 아티스틱한 패션을 하고 있거나, 얼굴이나 종아리 전체, 목 앞부분과 같은 곳에 타투를 하고 있었고 이런 사람들이 흔히 눈에 밟혔다. 또한 왠지 소신을 가지고 지방에서 상경한 뒤 비싼 월세를 감당하면서도 이 동네에서 버티고 있을 것만 같은, 빌라에서 나오는 힙한 청년, 코뚜레를 하고는 팬티라인이 보이지 않는 속옷을 입은 여성(그녀는 아마 티팬티를 입었을 것이다. 혹은 입지 않았거나), 오후 3시의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테라스에서 즐기고 있는 맥주는 모두 어떤 사회적 관념에 맞서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엄마가 사준 샤넬 로고가 박힌 금팔찌는 내 손목을 조금 고급지게 보이게 할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진 못할 것 같아 풀어버렸다. 이걸 차고 있으면 별로 쿨해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주관으로부터 나오는 자유로움이 풍기는 사람이고 싶다. 주관을 가지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 혹자는 나이를 먹으며 인생을 경험하다보면 주관이 생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갖고 있는 생각이듯 스스로가 경험하며 보는 세계관은 한정되어 있고 편협하다. 그렇기에 부모가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에게 어쩔 수 없는 세계관의 틀을 씌워주는 것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전부일테니까.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싹은 트지 않는다. 무지한 사람이 갖는 주관이나 신념은 위험하다. 이걸 알기에 내가 독서를 그토록 마음 속 짐처럼 여기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짧은 시간동안 경험한 세계관을 넓히고 싶고, 무지함 속에서 주관을 갖지 않기 위해 말이다. 물론 사람이 어떤 것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항상 스스로의 지식이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
영어에서 smart 하다는 말은 두가지로 나뉜다. book smart와 street smart. 전자는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이 많이 쌓인 똑똑한 사람이고, 후자는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거나 인간관계나 처세술에서 똑똑한 사람이다. 두 가지 방면에서 모두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여유와 공백은 우리 마음 뿐 아니라 생각에도 필요하다고, 그로부터 나오는 자유를 얻고싶다고, 해방촌에서 살얼음 낀 차가운 맥주와 함께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