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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ichloe Dec 22. 2023

'잘' 먹고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먹는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무엇인가요?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음식에 대한 사진과 얘기는 잘 없어요. 간혹 뭘 맛있게 먹었다 정도는 있어도,

맛집이나 '음식'에 대한 크레이빙으로 올리는 사진과 글은 잘 없는데, 이유는 '음식'사진을 안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허허.

뭐랄까 내 피드와 공간에는 예쁜 사진만 존재하면 좋겠는데 음식사진은 안예쁘다고 생각해서일까요.

그래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 맛있는 걸 먹는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가 먹은 것들에 대한 기록이어서 음식사진이 좀 늘어났는데요,

이것도 음식에 대한 애정으로 찍은 사진은 아니네요. 음식에 대한 저의 유별난 생각은 스무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감사하게도 살면서 살이 많이 쪄본 적이 없고, 고3 때는 스트레스로 살이 찌기는 커녕 빠져서 3x kg이었던 때도 있을 정도. 스무살이 되어 대학교 1학년때는, 원하는 시간에 운동 마음껏하고 원하는 라인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던 시간들 속에 운동이 1순위였지 먹는건 칼로리 낮은 음식만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운동은 먹은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가/유산소/수영을 1시간 이상씩 일주일 중 5일을 했고, 음식 먹을땐 칼로리를 계산하는게 음식 먹기 전의 습관이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칼로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지만요. 하여튼 그때는 마른게 최고로 예쁘다는 생각으로 살았고, '무조건' 저칼로리, 저지방,저탄수화물 음식을 '적게'먹고 최대한 많이 움직이는게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었어요. 마른 몸에 대한 강박 아닌 강박이 있을 정도였지요.

에너지바도 성분표 다 보고 겨우 고름. 선택하는데만 20 분 걸렸던.
여행가서도 샐러드
마른게 중요했던 시절


그러면서 몸무게는 늘 초초저체중을 유지하니 생리불순은 당연하고, 예민+수족냉증도 얻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이게 누굴 위한 운동이고 제한이지? 나를 위한게 맞는건가? 내가 먹고 싶고, 내 몸이 원하는 음식 대신 '먹어야하는' 것을 먹는 것이? (예를 들면, 저체중 유지를 위한 삶은 고구마, 삶은 계란, 사과 등) 또 항상 적게 먹어야한다고 생각하니 늘 배고픈 것 같고 ‘먹을 것’에 대한 크레이빙이 사라지질 않았죠.


조리하지 않은 과일과 원물
가끔 단호박이나 고구마대신 건강한 빵. 왼쪽에 야채 볶은 것도 아마 노오일, 노솔트로 볶았을 것.


늘 생각했던, 흘러가는대로 자연의 이치와 섭리에 맞게 늙어가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음식에도 적용을 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금 이 계절과 기온,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내 몸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음식의 텔레파시를 거스르고, 낮은 칼로리의 '먹어야만하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것인가? 나를 아껴주는 방법인가? 내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음식에 있어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니, 서서히 칼로리와 음식종류에 대한 강박이 사라졌어요. 늘 '더' 먹고 싶고 배고팠던 느낌에서도 벗어났어요. 그러던 차에,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엔 굉장히 불편했답니다. 원하는 시간에 운동도 못하고 밥도 정해진 시간에 한정적인 걸 먹어야하는 상황이니까요. 나는 지금 막 삶은 고구마를 먹고 싶은데, 광화문 한복판에서 낮 12시에 갓 삶은 고구마는 구할 수가 없고, 조미료가 가득한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먹는 수준이었죠.

그러면서, 저녁과 주말에는 좀 더 저를 위한 음식을 먹여줬어요. 하지만 저는 요리를 잘 못하기 때문에 과일 원물을 실컷 먹고, 건강한 음식을 사먹자, 건강한 메뉴의 밀키트를 해먹자! 였지만 바깥음식에서는 늘 한계를 느꼈어요. 메뉴부터 맛, 재료, 준비과정, 환경 등에서요. 특히 부모님 집에서 살 때는 건강한 집밥을 해주시니 괜찮았지만 자취경력 없이 결혼하며 독립한 지금은, 더욱더 '잘' 먹고 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잘은 못 만들어도 내가 지금 먹고 싶은 음식, 내 몸이 지금 원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여줘야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더더욱 느끼고 있는 거죠.


봄동전
이 커다란 겨울 무로 뭘 만들어볼까나~



하지만 방금 말했듯, 요리를 못해요.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리틀포레스트'인데요 (한국판, 일본판 모두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든, 요리 유튜브를 보든 어쩜 저렇게 재료 준비를 깔끔하게 하고 단계에 맞춰 챡챡 요리할까 대단한 생각이 들어요. 기대에 부푼 마음에 재료도 호기롭게 구매하고 요리를 시도해보면 늘 꼬이는 동선과 순서에 재료를 다 흘리고 어질러지는 부엌을 마주해서 스스로 김이 빠진답니다. 게다가 결과물마저 원하는 모양으로 나와주지 않으니 요리가 참 어려워요.


근데, 어렵다고 계속 피하고 안하면 이젠 안되겠더라고요. 더 이상 내 몸이 원하는 걸 만들어 넣어줄 때를 미룰수가 없다는 것을요. 어려워도, 처음엔 다 어려우니까! 라는 생각으로 하나 둘 시도해나가는 연습이 필요해서 시작하고 있는데 역시 쉽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해 나가다보면 언젠가 요리사는 아니라도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을 후다닥 준비해서 해먹는, 저를 좀 더 아끼는 사람이 되어 있겠죠? 포부에 차고 실망하고 그만두는게 아니라, 먹는건 평생하는 행위니까. 요리 초보인 저에게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건강한 몸과 생각의 라인을 만들어가는데에 저의 먹는 방법인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식(食)의 삶을 기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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