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요가를 가기전 잠깐 뜨는 40분 남짓의 시간에는 간단히 허기를 달랠 간식을 먹는다. 다이제같은 간단한 비스켓 3-4조각과 구운계란을 먹는데, 40분이면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임에도 식사대신 간식을 먹는 이유는, 요가를 할 땐 빈속이어야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빈야사를 끝내고, 요가원과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작은 마트에 가서 푸른잎 채소를 한가지 사오려고 했다. (아직 나오긴 이르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겨울 시금치가 있다면 마늘이랑 볶아서 간단히 해먹을 오일파스타를 기대하며 요가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마트로 향했다.
시간이 늦어서일까, 진열대는 텅텅 비어있었고 그나마 있던 냉이는 아직 제대로 된 추위가 오지않아서 향이 진할 것 같지가 않았다. (냉이, 시금치와 같은 겨울채소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며 자라야 단맛이 강하다. 근데 올해는 추운 날이 거의 없었어서 찐냉이와 시금치를 만나게 되는 날이 더 늦어질 것만 같다.) 게다가 내일 전통시장을 갈 일이 있으니 거기가서 제대로 사오자는 생각에 오늘의 구매는 미뤘다. 그렇게 늦은 저녁으로 뭘 해먹지 고민 하며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간다. 늦은 저녁이기 때문에 먹었을 때 부담스럽지 않고 많은 포만감이 드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요가로 수련을 하고 난 뒤라, 좀 더 가볍게 먹고 싶었다.
어제부터 내리 비가 오면서 얼른 뜨거운 물로 개운하게 씻고 싶다는 생각과 점점 거세지는 추위에 포슬포슬한 달걀 볶음밥이 생각났다. 좀 더 포근하고 따뜻한 순정 그 자체. 순수하고 청순한 외모의 볶음밥.
머릿속에 볶음밥의 이미지와 느낌이 그려지자, 팬을 달구고 얼려놓은 다진 마늘과 대파를 왕-창- 넣으니 치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늘과 파의 알싸하면서 고소한 향이 올라오기시작한다. 얼려놓은 현미밥을 해동해서 후라이팬에 투하. 간은 간장으로만 맞추고 달걀을 밥 위에 풀어 뒤적뒤적 익혀 좀 더 달걀볶음밥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줬다. 사실 자극적인 맛을 위해 굴소스를 넣을까 고민했지만, 오늘은 현란한 맛보다 '순수하고 청순한' 볶음밥의 맛을 곱씹고 싶었으므로 굴소스는 과감히 생략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저녁은, 오랜만에 귀여운 곰돌이 접시에 담았다. 한술 뜨는데, 맙소사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간을 원체 못하던 내가 간도 잘 맞췄고 고슬고슬한 현미밥의 식감, 왕창 넣은 마늘과 파의 고소한 고유의 향과 간혹 덜 다져진 마늘의 뭉뜽그런 식감까지. 간단하지만 맛은 상상 이상으로 완벽했다. 추운밖에서 내가 느끼고 싶은 포근하고 편안한, 깨끗한 분위기와 감정을 음식에 녹여냈기 때문일까, 요가를 하고 나서 좀 더 내 속의 이야기를 들으며 메뉴를 정하고 요리했기 때문일까. 오늘의 식사는 뭘 먹을지 고민하고 결정하고, 만들어 먹고 정리하는 순간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그 순간에 먹고 싶은 걸 간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먹는 것. 내가 생각한 나의 삶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