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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ichloe Dec 28. 2023

할머니의 느린 부엌

자연을 따라 흐르는 음식과 나의 생각이 시작된 할머니의 부엌



나는 좀 신기할 정도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지, 어떤 헤어스타일과 옷이 제일 잘 어울리는지 알고있다.

단순한 삶, 잘 먹고 잘 자는 것, 정적인 운동, 건강한 생각과 몸, 편하고 간결한 기본의 옷, 티셔츠 한장과 편한 바지, 민낯, 자연스러움, 자연

위에 적은 것들을 나도 모르게 헤치거나, 그 반대의 것들을 취할 때면 내가 아닌 것 같은 어색함이 든다. 예를 들어, 나답지 않게 복잡한 음식을 먹거나 타이트한 불편한 옷을 입었을 때.

이런 내 인식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궁금해서 지난 기록들을 들춰본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과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치. 이게 나의 근본인데, 이 모든 건 아마 할머니와 생활하며 익힌 것 같다.




맞벌이 부모님 대신 갓난아기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한 집에서 돌봐주신 우리 할머니. 내가 멀고 긴 여행을 다녀오면 늘 이불을 빨고 빳빳하게 말려놓으시고, 해외에서 그리웠을 각종 나물반찬과 맛있는 밥, 청국장을 끓여주셨던 할머니.

할머니는 늘 매일같이 시장에 가셔서 그 때 나온 제철 재료들을 사와 된장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쳐 건강한 식탁을 만들어주셨다. 직접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냄새나지만 방에서 발효도 했다. 이렇게 직접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어 먹었고, 청국장을 직접 쑤어 만들어 먹었다. 초겨울이 되면 김장도 했다. 몸이 추울 때면 대추와 배를 넣어 대추차를 끓여마셨고, 부엌엔 늘 제철채소와 제철과일이 끊이지 않았다. 간마늘을 사지않고 직접 다졌고, 가을에 감이 나오면 사다가 직접 말려 홍시를 만들었다. 모든게 느리게 흘러갔지만 그것이 할머니의 부엌이었다.






할머니의 느린 부엌을 보고 그 음식들을 먹으며 자란 나는 어쩌면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삶을 사는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래서 계절의 공기냄새, 재료의 변화, 그에 따른 몸과 생각의 상태에 그렇게 예민했나보다. 이제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수수께끼가 깨끗하게 풀렸다.

6-7년전에 블로그에 남긴 글을 조금 읽었는데 아, 이래야 나지. 라는 생각이 확 드는 글들이다. 이제 이 때의 경험들을 살려 진짜 내것으로 만들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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