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취재 그 후 1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에서 '아직은 기레기'로 헤드라인을 바꿨다. 이젠 젊지 않아서 그렇다. 2024년 12월 3일부터 쉴 새 없이 달렸다(유럽 여행 취소 ㅠㅠ아 참고로 작년에 장기 적출 안 했으면 난 계엄군이었다).
그 누가 계엄을 경험해 볼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나. 팀을 꾸려 타 매체 선배 및 후배들과 협업하면서 면상에 풍화작용은 더욱 심해졌다.
윤석열의 내란과 관련해 난 주로 국군정보사령부와 관련된 기사를 썼다. 봉지욱 선배 덕에 모 라디오 프로그램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정보사가 어떻게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됐는지 언급하면서 조금이나마 알려졌다. 다만 여전히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 내용이 많다. 검증되지 않은 '전언'과 '주장'에 불과한 첩보다. 일부는 군사기밀을 그대로 노출하는 꼴이기에 그렇다.
정보사 취재는 사실 어렵지 않았다. 이것도 인연일까? 지난 4~5년간 마약 사건만 취재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북한산 마약' 관련 취재를 하려면 이른바 정보기관과의 접촉이 필수적이다. 정보사도 국정원처럼 북한산 마약과 관련된 첩보를 휴민트(820 인간정보)를 통해 수집한다. 3년 전 정보사에 근무한다는 한 분을 소개받고 그분을 통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정보사 한 고위 관계자 A씨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 여 전 사령관은 구속기소됐고 A씨는 검찰 특수본과 내란 특검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서인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계엄법에 '정보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북 작전 및 임무 외에는 권한이 없다. 정보사 여단장(820)을 역임한 홍천 출신 고희재 전 장군이 대표적이다. 과거 정부의 '정치적 압력'이 있었음에도 굴하지 않았다. 헌정사상 정보사가 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정말 지난해 12월 3일 선관위와 국회에 간첩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내가 만났던 820 대북공작 요원들은 그렇다. 실제 법률과 일상적 상식 그늘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편의대'처럼 사회생활은 하지만 특정 누군가를 옭아매려 간접적으로 설득한 후 겁박하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배신의 연속성을 띠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란 없다. 그저 타인을 통해 그 타인이 속한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한 삶이다.
HID는 '공작당한' 존재를 옮기거나 특정 목표를 소거한다. 대북공작 요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물리적 해결사'다. 수거, 소요, 납치, 암살 등 영화에나 나올 법한 것들이 이들의 주 임무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대외적 임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판교에서만 대기하지 않았다. 종로, 서촌 인근, 방배동. 왜 여기에 모여 있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에게 지시를 받았고 그걸 이행함으로써의 대가도 묻지 않았다.
특검이 출범하기 전부터 만났던 정보사분들은 자괴감과 죄책감에 팽배해 있었다. 최근 특검 조사를 마치고 만난 정보사 관계자는 "국민들을 죽이려 했을 수도 있다는 자괴감을 안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선관위 직원들 중에서 여성도 있었다. 국회든 선관위든 가서 때려잡으라는 노상원의 지시를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선관위 직원들이 어떻게 간첩일 수 있겠냐. 말이 안 된다. 물리적 조치는 최소한으로 하고 여직원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노상원이 말한 '대가리를 깨라' '고문을 하면 입이 열린다'는 남녀불문이었다."
이 말을 듣고 "에이..... 진짜 하려던 건 아니죠?"라고 물었으나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라고 하더라.
'군인'이기에 맞는 말이다. 난 정보사 관계자 분들의 저 말에 "대기만 해주시어 감사해요"라고 했다.
"기자님. 저희 딸이 그러더라고요. 얼굴은 보안 때문에 노출이 안 됐지만 목소리는 노출된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쩌다 딸이 알게 됐습니다. 증오한다고 합니다. 정말 국민을 죽이려 했냐고 합니다.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어서였을까? 공감하면 좋은 정보가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그러나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에 "그렇군요"라고 마무리했다.
대북공작을 수행하며 국가를 위해 수십 년간 뼈를 깎은 그들도 결국 '인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원수 겸 살인자이자 하염없는 괴물일 수 있다. 냉혈한인 줄 알았지만 모순적이게도 아파할 줄 안다. 정작 자신의 소중함이 소멸될 것 같을 땐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