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혼 Feb 06. 2020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Abyss

'나'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나'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을 잃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우울함에 빠진다.


이 같은 무저갱에 빠진 것은 2017년 10월이 처음이었다. 당시 나는 '기자질'을 하다가 법정구속을 당했었다. 보석으로 금방 풀려나긴 했지만 멘탈이 매우 좋지 않았다. '기자'라는 직업을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정확하게는 '번아웃'에 빠졌다.


사실 난 기자라는 직업을 좋아해서 한 것이 아니다. 현재도 그러하다.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나중에 하겠다.


어찌 됐건 난 당시 번아웃 증후군과 내 곁에 '나'라는 인간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 정신적 탈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내가 번아웃 증후군을 겪게 된 과정은 이렇다.


열성: "진실을 밝힐 거야!"라는 생각으로 기자를 하고면 열정이 넘쳤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으며 어려운 직무라도 스스럼없이 맡아내고, 자주 있는 야근이나 주말 출근도 자발적으로 행한다. 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성취감은 삶의 낙이요 전부였다.

침체:  업무수행 자체는 무리 없이 해내지만 처음 입사할 적 느꼈던 흥미는 점점 떨어져 간다. 슬슬 직무에서 오는 보람은 뒷전이 되고 자신을 둘러싼 근무환경을 챙기기 시작한다. 보수, 근무시간, 업무환경은 이 직무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하는 요소로 승격된다.

좌절: 오랫동안 근무하진 않았으나 수많은 좌절을 느꼈다. 신념과 사명감이 아닌 명예를 챙기기 바빠졌다.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동시에 자신의 직무가 가지는 가치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왜?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으니까. 나이가 든 탓일까, 삭신이 멀쩡한 곳이 없다.

무관심: 스트레스는 이미 극한에 다다랐고, 업무는 여전히 벅차다. 흥미가 없는 일을 하려니 커진 스트레스는 가뜩이나 실패 투성이인 자신의 직무 인생에 더 많은 실패를 가져다준다. 확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당장의 벌이가 없다면 절대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기권'을 선택한다. 직무에 대한 모든 감정선을 차단한 채 묵묵히 버텨내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목을 죄는 스트레스는 버티기 힘들다.


조금만 쉬어갈까? 는 개뿔 더 화나잖아!


3년간 일 만하고 살아서 그런지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인들의 걱정이 시작됐다. 한 달에 한 번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건강도 굉장히 악화됐다.


그래서 동아리라는 것을 시작했다. 술만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는 동아리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며 타인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쉼터'가 필요했다.


내가 당시 들어간 동아리는 'SPL' 스프링이라는 발표 동아리였다. 2019년 초까지 운영진을 하고 동아리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당시 나의 별명은 '젊은 꼰대'였다. 아니 '진지충', '아재'라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다. 난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지와 내 삶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 별 것도 아닌 저런 놀림으로 화가 났던 적이 많다. 또 내가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너무 진지하다는 이유로 타인이 욕을 할 때면 화가 났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유머 없는 놈, 인기 없는 놈"이라며 욕하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재밌어 질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러나 알았다. 그것은 나 자신이 아니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데 굳이 남의 시선에 맞춰 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했다.


연락하지 마쇼. 떠날 거면 떠나라 안 잡아. 어차피 나한테 이점이 없었어 넌


이 동아리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원했던 '쉼터'였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내가 풀고 싶은 모든 것들을 해소할 순 없으니까.


동아리가 끝난 지 1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도 있다. 꽤나 말이 잘 통하고 죽이 잘 맞아서 일까? 물론 항상 "만나자", "어디야?", "다음에 꼭 보자"라고 말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걱정하는 척'을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았다.


지난해 인간관계에 대해 환멸을 느꼈을 때에는 그런 연락들에 대해 상당히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다가 내가 잘 되는 것을 봤거나 보였을 때 갑자기 연락이 온다. "시간 돼?"라며 약속을 잡지만 약속을 뭉갠다. 갑자기 "나 안 될 것 같다. 바쁘다. 미안하다. 다음에 보자"라고 한다.


나 또한 그런 적은 있다. 그러나 난 워낙 이기적인 놈이라 애초에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진짜 소중한 사람 또는 친구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같은 인간관계에서 '강주원' 작가를 만나고 난 이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쓰레기 같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굉장히 많이 친해진 주원이 형은 강연 단체 '꿈톡'이라는 곳의 대표다. 지금은 책을 쓰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주원이 형이 최근 쓴 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라는 책이다. 이 책을 벌써 여섯 번 읽었다. 출근길과 퇴근길. 잠이 오지 않을 때. 정말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지금 이 글에 가장 어울리는 페이지가 있다.


191P 딱 거기까지


수많은 변명을 뒤로하고 그 사람이 당신과의 관계를 끝낸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이 딱 거기까지 이기 때문이다.


이 같이 말하면서도 난 수많은 인간관계에 미련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난 이기적인 놈이기 때문에 쉽게 깊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란 걸.


인간관계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저갱이란 놈은 따라왔다.


나중에 하기로 한 이야기를 해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