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아침 7시, 내가 스벅으로 향하는 이유
모든 남자의 이상형은 예쁜 여자도, 착한 여자도 아닌 처음 보는 여자라는 우스갯소리. 어이가 없다가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모든 새로움에는 언제나 설렘이라는 향기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러나 필연의 익숙함이 찾아오면 달콤했던 설렘의 향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새로 장만한 구두, 출시를 기다렸던 스마트폰처럼 처음 보는 사물도 우리에게 설렘을 준다. 소유하는 순간 뇌에는 도파민이 등판하고, 심장은 경쾌한 비트로 뛰기 시작한다. 이 반짝이는 신상과 함께할 날들을 눈앞에 그리며 홍조 띤 미소가 드리운다. 마치 이상형을 만난 듯이. 그러나 우리는 비슷한 얼굴로 다가오는 낯섦과 설렘을 구분해야 한다.
초면이라 설레는 마법 공식에 의해 많은 사람이 쇼핑중독에 빠진다. 나 역시도 한때는 그랬다. 시즌별로 등장하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손에 넣고자 고군분투했다. 2주마다 신상이 등장하는 SPA브랜드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처음 본 컬러, 처음 본 디테일에 매료되어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결제의 순간은 짜릿한 설렘을 주지만, 구멍 뚫린 욕망의 바구니는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유명한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가 한 말이다. 어느 날, 드레스룸에 빼곡히 걸려있는 옷과 가방들은 바라보는데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도파민이 조장한 ‘가짜 설렘’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며, 그와 함께 내 통장 잔액도 증발해 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곤도 마리에로 빙의해(사실 그녀처럼 쿨하진 못했다) 많은 옷과 물건을 정리했다. 통곡의 비움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버려질 물건에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자괴감에 속이 쓰리지만, 설렘이라 착각했던 보상 욕구에서 비로소 벗어났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현재 나의 이상형은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날 수 있다. 반년째 이곳에서 독서 모임을 하고 있는데, 회원들이 가져오는 처음 보는 책을 보면 나는 이상형을 만난 듯 가슴이 설렌다. 각자 한 주간 읽었던 책 중에 추천할 만한 책을 숙고해 소개한다. 그야말로 독서 고수들이 찍어주는 믿고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관심이 없던 전문 분야, 숨은 보석 같은 신인 작가, 차마 범접하지 못했던 고전까지 다양하다.
주말 독서 모임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대여할 책 목록을 손에 쥐고 나면, 또 다시 설레는 한 주가 시작된다. 무슨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어떤 깨달음이 내게 찾아올까? 처음 보는 추천도서는 설렘 그 자체다. 그 설렘은 책을 덮은 후에도 꽤 지속된다. 인생에서 찾아야 할 ‘진짜 설렘’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매일이 똑같게 느껴지는 우리의 고단한 삶은 언제나 설렘을 갈구한다. 그러다 보면 순간의 낯섦을 설렘으로 오해하기 쉽다. 진정한 설렘은 봄볕처럼 다가와 새싹 같은 시작을 틔운다. 그 다음이 기대되는 마음이다. 오늘 만난 설렘이 당신의 내일을, 앞으로의 수많은 날을 채워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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