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지 않음이 명확한 우리의 삶
"엄마, 몇 밤 자면 겨울이 돼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와 긴긴 겨울방학이 기다려지는 아들이 묻는다. 이 애매한 질문에 나는 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글쎄, 지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중이야. 금방 겨울이 올 것 같아"
아들의 눈동자에 답답한 마음이 동그랗게 떠오르고, 눈썹은 지렁이처럼 구불거린다. 그러면서 또다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 그러니까~ 몇 월 며칠부터 겨울이냐고오~"
요즘,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서서 이 옷도 저 옷도 걸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거리에 나가면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과 경량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혼재해 있다. 누군가는 지난한 여름 끝에 마주한 서늘함을 즐기고 있고, 누군가는 급락하는 주가처럼 시퍼렇게 내려앉은 수온주와 찬바람에 당황하고 있다. 난 후자에 해당된다. 추석 전, 급히 겨울 옷 몇 벌을 꺼냈지만 막상 그 옷들을 입고 나가길 주저한다. 그러고는 아침, 저녁마다 스쿠루지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미간까지 찌푸린다. 아들의 엉뚱한 질문처럼 정확히 몇 월 며칠까지 가을이고, 그다음 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면 나의 의복생활은 좀 슬기로워졌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에서 정말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것들이 별로 없다. 흔히들 말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 걸까?(그 보다 먼저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신혼은 언제까지고 권태기는 언제 찾아오는 것이며(이건 대충 알 것도 같다), 중년은 몇 살부터를 이야기하는가? (나는 청년인가, 중년인가) 따뜻한 물은 몇 도이며(적어도 남편과 내가 생각하는 온도는 차이가 크다), 진실된 마음은 얼마나 투명해야 하는가? (거짓이 없다고 배려까지 없어지면 곤란하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명확하지 않아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온다. 내 맘 같지 않아서, 어찌 될지 몰라서. 불안하고 예민해진다. 명확한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일까? 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명확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삶이 힘들 때, 우리는 명확함을 잠시 잊어야 할까? 아니면 명확할 수 있는(보통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은 명확하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돈 같은) 것만을 찾으며 안정감을 느껴야 할까?
명백하고 확실한 그 무엇이 우리의 삶을 더 훌륭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지금, 계절의 경계에 서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속성을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그 모호함을 누구에게 탓할 것인가.
아마도 우리에겐
명확한 경계보다 여유롭게 바라보는 마음.
그것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삶은 명확하지 않은 것이 명확하니까.
#글루틴
#가을과겨울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