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책 리뷰
그 유명한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 <Non, Je Ne Regrette Rien(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의 가사처럼 후회 없는 삶을 지향했던 적이 있다. 후회해 봐야 지나간 일.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릴 바에는 쿨하게 잊어버리겠다. 후회 따위 하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그래서 후회할 만한 일도 후회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 적도 많다. 누군가의 잘못인지 잘 모르지만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관계에서 후회 없이 떠나버리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으며, 약간의 손해를 보아도 꼼꼼히 따져 묻지 않고 그냥 털어버리곤 했다.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도취되어 '난 지난 일을 후회하지 않는 꽤 나이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20~30대를 보낸 것을 나는 후회한다.
파국으로 끝맺은 관계 속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짚어 봐야 했다. 다시는 같은 일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철저히 후회했어야만 했다. 그저 다시 들쳐보고 싶지 않은 부패한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었다. 후회스러운 나의 역사를 들춰내고,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고, 한 발짝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았어야만 했다. 사실 후회는 쿨하지 못한 질척임이 아니라, 더 나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성찰 치트키였다. 나의 이런 자각을 도와준 책 <후회의 재발견>을 소개해 보려 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손꼽히는 다니엘 핑크는 심리학과 과학,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 흥미로운 연구와 분석이 담긴 책들을 꾸준히 내고 있다. <후회의 재발견>은 2022년에 나온 신작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불쾌한 감정인 후회의 힘을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쿨병(!)에 걸려있던 나에겐 다소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아니, 왜? 후회를 하라고? 진정 후회만 하며 인생을 허비하란 말인가? 하지만 책 표지를 화려하게 감싸고 있는 오렌지 컬러 띠지의 추천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 이렇게 칭찬이 자자한데, 한 번 읽어나 보지.
저자는 105개국 1만 6,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세계 후회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사람들의 후회 사례 중에서 한국인의 설문내용도 등장한다. 놀라운 건 후회의 형태가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중에 웃음을 줬던(실제 책을 읽으며 뿜었던) 내용은 세계 여러 국가에 '나는 후회하지 않아'라는 글귀를 몸에 문신 한 것을 후회한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대규모 설문조사의 결론은 동시대 인간들은 모두 비슷한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를 갖는 핵심후회를 4가지로 나누어 분류했다.
기반성 후회_ 그 일을 했더라면
대담성 후회_ 위험을 감수했더라면
도덕성 후회_ 옳은 일을 했더라면
관계성 후회_ 손을 내밀었더라면
인생 전반에 두고두고 후회를 담기는 후회는 모두 저 4가지 패턴에 해당된다. 학업, 진로결정, 연애, 가족이나 친구관계. 노력을 다하지 못했거나, 용기가 부족해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것들이다. 사실 이 네 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후회가 아니라면 예측하거나 돌아볼 가치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럼 이미 발생한 이 핵심 후회를 우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 책에서는 우리가 후회를 통해 미래를 개선하고 발전의 연료로 쓸 수 있는 과정, 3단계를 소개힌다.
1단계.자기노출: 드러내고 덜어내기
2단계.자기연민: 정상화하고 중화하기
3단계.자기거리두기: 분석하고 전략 짜기
올바르게 회고할 때라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기노출, 자기연민, 자기거리두기라는 세 단계는 후회를 안정과 성취, 목적을 위한 강력한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후회의 재발견> 245페이지 중-
1단계에서 소개된 후회의 자기노출 방법은 후회되는 일을 기록하거나, 타인에게 이야기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녹음이라도 해 스스로에게 들려주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무형의 부정적 감정이던 후회가 비로소 실체를 드러낸다. 다음으로 노출된 후회를 보며 자기비판을 하거나 반대로 숨은 자존감을 짜내는 대신, 자기연민을 갖으라고 조언한다. 보통 자신의 실수에는 엄격하지만 같은 실수를 가족이나 친구가 했다고 하면 연민을 갖고 위로하는 경우가 많다. 2단계 자기연민을 통해 문제를 정상화하고 중화할 수 있다. 마지막 3단계 자기거리두기는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실제 책에서 알려준 방법이다) 나의 행동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분리되어 후회되는 일을 바라보면 좀 더 객관적인 분석과 전략수립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이게 가장 어려운 단계라고 생각되지만, 여러 번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느낌을 알아 갈 수 있다.
실제 나에게 적용해 보니, 정말 효과가 있었다. 나는 ‘약속에 자꾸 늦는 것’을 후회하고 있음을 주변에게 자주 이야기 했고, 자기연민 과정을 통해 가족의 모든 대소사를 직접 챙겨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자 시간을 타이트하게 계획해서 늘 전전긍긍하며 하루 일과를 해내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가족이나 가전제품에게 내가 하던 일을 일부 넘기고, 시간을 좀 더 여유있게 관리하게 되었다. 지금은 지각으로 인해 후회하는 상황은 많이 줄었다.
책에서는 후회를 재발견하는 이 3단계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목표는 후회의 최소화가 아닌 ‘후회의 최적화’라고 말한다. 또, 앞서 소개한 4가지 핵심후회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후회 최적화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우리는 후회를 재발견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후회를 무작정 외면하고 살던 나날들에 비해 후회를 직면하고, 연민과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니 같은 후회를 비교적 덜 하게 된다. 부정적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 쩔쩔매던 나였지만 이제, 후회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다. 우리 더 이상 후회한 걸 후회하지 말자.
#글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