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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07. 2017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윤동주 참회록 中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참회록은 윤동주가 생을 마감하기 3년 전인 1942년에 쓴 시다. 스물아홉에 생을 마감했으니 참회록을 쓸 때는 스물여섯이었다. 별 헤는 밤과 서시는 41년, 자화상은 39년에 쓰였다.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읽히는 시들을 윤동주는 겨우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쓴 것이다. 과연 그때의 윤동주보다 나이가 많은 나는 이토록 깊은 성찰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지만 윤동주가 녹이 낀 거울 속에서 봤던 것을 보기에는 너무나 평온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어보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나 영화 <동주>에 등장하는 시외에도 많은 시들이 있었다. 윤동주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라 그저 시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한글로 시를 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윤동주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다.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송몽규를 보면서 윤동주는 더욱 스스로를 부끄러워했지만 한국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많은 당대의 문인들조차도 변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굴복하지 않는 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윤동주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말한 정지용은 1946년에 창간된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이 되었는데 윤동주의 사후에도 그의 시들이 발표될 수 있도록 힘썼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정약용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정약용은 서문에서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동주는 절친이었던 송몽규에 비하면 유약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시를 쓰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확고했던 것 같다. 1935년부터 1942년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기 전까지 쉬지 않고 시를 썼다. 그중에서도 1942년 릿교대학에 재학 중일 때 썼다는 시들,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쉽게 쓰여진 시', '봄' 등은 참회록, 서시, 별 헤는 밤과 더불어 가장 인상 깊다. 이때 쓰인 시들은 윤동주가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의 신분으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끝에 탄생시킨 것들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일본에서도 무언가 자신과 다르게 독립을 위한 일을 꾸미는 송몽규를 보며 시를 쓰는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윤동주는 이 모든 것들을 시로 표현하고자 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1942년 6월에 쓴 '쉽게 쓰여진 시'는 이전의 시들보다 강한 의지와 자신이 처한 시대에 시를 쓰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성찰이 느껴진다. 영화에서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자신도 끼워달라고 말했던 것처럼 윤동주는 체포되기 전에 무언가 결심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를 읽으면 윤동주가 시인으로서 얼마나 깊이 고뇌했는지, 그리고 일제시대의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풍파가 어떤 것이었는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영화 <동주>
"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


 학창 시절 윤동주의 시를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가며 배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수업을 윤동주가 들었더라면 시는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개인이 스스로 다르게 해석하며 읽을 수 있는 문학을 왜 하나의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배우는 것일까.


 송몽규는 영화 '동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윤동주에 대해서도 역사 시간이 아니라 문학 시간에만 배웠던 것 같다. 이들이 이북 출신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이 대단히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기에 마땅히 후손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야 함에도 우리는 일부 유명 위인들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동주'같은 영화가 더욱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나라가 역사 속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까맣게 잊고 그저 자신의 시대가 평온함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윤동주가 일제시대에 시를 썼던 것보다 천 배, 만 배는 더욱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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