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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n 07. 2018

그의 오만, 그녀의 편견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지난 며칠간은 하루 2시간 왕복의 지하철 여정이 괴롭지만은 않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오후 다섯 시의 '지옥철'에 실려 가고 있으면서도 책을 펼치면 금세 마치 18세기 영국 시골마을인 롱본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집중할 수 있는 소설이었는데, 고전문학 중에서 이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던 소설은 아마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탁월한 인물에 대한 묘사와 풍자, 그리고 빠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또 조금도 지루하지 않은 전개를 구사하는 제인 오스틴의 솜씨가 1813년에 발간된 이 소설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2003),  민음사 / 출처 : Daum 책



여전히 유효한 의미


 오만과 편견은 1813년에 처음 출판되었으니 200년도 지난 소설이지만 제인 오스틴이 전하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인간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조차 잊고, 스스로 고심해서 판단하기보단 전해지는 대로, 대부분 자극적으로 포장되기까지 하는 정보들을 너무나 쉽게 믿고 또 재생산하는 일이 요즘은 너무나 많은 듯하다. 엘리자베스가 한쪽의 말만 듣고 다른 한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대했음을, 너무나 쉽게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말을 믿고 동의했음을 깊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장면은 오늘의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입해보면 깊은 울림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인정하고 견해를 수정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무엇이든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중략)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31p)


  베넷 가의 셋째 딸 '메리'를 통해 허영과 오만의 차이를 설파하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이다. 물론 외모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인해 틈만 나면(적절치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뽐내기를 좋아하는, 허영심 가득 찬 인물인 메리에게서 나오는 말이라는 점도 재밌는 요소다.




<오만과 편견>에 존재하는 오만과 편견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라는 대사는 <오만과 편견>의 명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본문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워낙에 인기 있는 고전이다 보니 번역판이 몇 가지 씩이나 존재하지만 내가 읽은(가장 흔히 읽히기도 하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오만과 편견>에는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서 단 한 번도 이 비슷한 문구가 등장하지 않았다. 나 역시 저 유명한 한 문장을 기대하며 소설을 읽어 나갔던 터라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포털에 해당 문구를 검색하기만 해도 수십 개의 게시물이 해당 구절을 인용하면서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이라고 적어 놓은 반면에, 출판사와 페이지를 함께 표시해둔 글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과연 제인 오스틴이 만들어 낸 문장이 맞는지 궁금해진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허영심' 역시 경계하고 있는데, 과연 허영심을 풍자한 소설이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허영심으로 인해 마구잡이로 인용되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다행스러운 점은 그 오만과 편견의 명대사라 알려진 구절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곡해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 오히려 소설 전체의 내용과 의미를 아주 잘 요약했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편견은 '엘리자베스 베넷'이 '피츠윌리엄 다아시'에게 가진 편견이다. 말수가 적고 무심한, 상냥한 그의 친구 빙리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다아시의 첫인상으로부터 시작된 편견은 '위컴'이라는, 아주 잘생겼지만 후안무치한 남자의 다아시에 대한 왜곡과 비난으로 더욱이 굳어진다.


 그러나 책의 제목이 <오만과 편견>이듯, 두 주인공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엘리자베스의 편견만이 아니다. 다아시는 말 그대로 '진국'인 남자이지만, 실제로 높은 신분에서 나오는 오만한 구석은 분명히 있다. 이는 엘리자베스에게 행하는 첫 번째 청혼과 그 이후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사랑을 고백하는 와중에도 베넷 가의 교양 없는 몇몇 인물들이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그런 식으로도 자신의 높은 지위와 재산, 외모 등을 미루어 보아 청혼이 거절당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 것은 참으로 오만했다. 또한 자신의 판단으로 빙리와 제인을 갈라놓았던 사건 역시 오만함이 존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다아시의 행동에 일부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다아시는 원래도 무척 괜찮은 남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엘리자베스로 인해 오만을 인정하게 된 이후 그는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두 번째 청혼에서 "제 애정과 소망은 전혀 변함이 없지만, 당신의 단 한마디로 영원히 입을 다물겠습니다."라며 굉장히 깔끔한 모습을 보인다. 아주 적절한 사전 행동만 있었을 뿐, 구구절절 덧붙이는 말은 없다. 여전히 어머니와 동생들은 귀족적 교양과는 거리가 멀고, 위컴과 리디아의 도피와 결혼으로 훨씬 베넷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졌음에도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다시 청혼하는 것은 그가 스스로의 오만을 완전히 버렸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는 둘은 이어질 수 없었다. 다아시가 사랑 앞에서 어떤 오만함도 남겨두지 않은 채 엘리자베스의 모든 것을 포용했기에 둘의 사랑이 싹틀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아시는 이야기의 첫 부분부터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거의 결말에 가까워서다. 다아시(자신)의 오만이 엘리자베스(타인)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만듦과 동시에, 엘리자베스(자신)의 편견이 다아시(타인)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말 그대로 오만과 편견에서 시작된 오해와 엇갈림을, 각자가 가진 오만과 편견을 인정하고 제거함으로써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라는 구절의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에 담겨있는 의미는 아주 잘 요약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을 읽고 있는 것을 본 한 후배가 문득 "저 그거 읽다가 포기했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에는 그만큼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심지어 호칭도 계속 변한다. 엘리자베스 베넷은 리지가 되었다가 일라이자가 되었다가 하며, 마지막에는 다아시 부인이 된다. 베넷씨는 말 그대로 베넷이며 베넷 부인은 그의 아내이고 베넷 양은 베넷의 맏딸 제인이다. 이는 소설이 쓰인 방식에 문제가 있다기 보단 오히려 작가가 상황에 따라 풍부한 표현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배경이 되는 시기의 영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런 점은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이야 말로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니 말이다.


 수많은 등장인물, 생소한 문화에 대한 묘사로 처음엔 다소 골치가 아팠던 것이 사실이지만 <오만과 편견>을 읽는 동안 가장 흥미로웠던 점이 바로 그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고 영국 근대의 남녀문제, 사교계라는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과 피츠윌리엄 다아시를 중점으로 한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오만과 편견>에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선량하고 올곧은 제인을 비롯하여 읽는 사람도 피곤할 정도로 미치도록 말이 많은 콜린스, 너무나 상반되는 베넷 부부와 지위와 전혀 걸맞지 않은 인격을 보이는 캐서린 영부인 등 개성 있고 재미있는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제인 오스틴의 탁월한 묘사를 따라 소설의 배경인 롱본에서 네더필드로, 더비셔와 펨벌리로 옮겨가며 각자 개성을 가진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야 말로 오랜 사랑을 받은 <오만과 편견>이 제공하는 최상의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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