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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n 24. 2018

어째서 계속 살아가게 되는 걸까

오베라는 남자 (A man called Ove, 2015)

 "나 좀 죽자, 죽어. 미치겠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인공이라는 남자가 목을 매고 있다. 다행히 소란스러운 그의 이웃들은 주인공의 너무 이른 퇴장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하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끝까지, 아내를 먼저 보낸 오베(롤프 라스가드)는 줄기차게 그녀의 곁을 뒤따르려는 시도를 일삼는다. 그런데 다양한 자살시도가 반복됨에도, 그리고 그 동기가 결코 장난스럽지 않음에도 순간순간 피식 웃음이 나는 순간도 있다.


 이 영화는 어딘가에는 있을법한 파란만장한 하나의 인생을 그렇게 다양한 감정과 함께 조명한다. 보는 이들을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면서 오베라는 남자의 삶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우리네 인생에 대해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러나 가볍지만도 않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드는 영화 <오베라는 남자>다.


  영화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 Daum 영화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배우자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에게는 그 하나로 세상을 등 이유는 충분할 수 있지만 오베의 상황은 좀 더 그럴듯하다. 59세의 나이에 평생을 일해온 직장에서도 곧 해고되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고 유산 이후에는 자식도 가지지 못했다. 고된 생을 지금까지 버티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이 아내였던 것이다. 그 한 사람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어 아내를 따라가겠다는 오베다. 자살은 말려야 하겠지만 만약 그를 만난다면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그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평생 해오던 일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살아오는 동안 힘든 일이 너무나 많았고, 이제는 가족마저 한 명이 남아있지 않다. 마음 써서 이끌어 왔던 마을마저도 자신을 무시하는 듯하다. 아내의 묘지에 꽃을 놓고 땅속의 그녀에게나마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그에게 가장 소중한 일과다. 과연 나였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가 먼저 간 저세상이 어떤 곳인진 몰라도 일단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어찌 안 들까 싶다.


출처 - Daum 영화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일까, 그는 항상 정장을 갖춰 입고 죽음을 준비한다. 그런데 밧줄을 달아 놓은 방의 창 밖으로 곧 시끄러운 이웃, 파르바네(바하르 파르스)와 그녀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오베가 아무리 까칠하게 굴려고 해도 그의 본성이 착한 사람이고 또 파르바네와 딸들도 붙임성이 좋아서 그녀의 가족들은 점점 오베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새로운 이웃의 등장과 함께 아내가 떠난 뒤 텅 비어 있던 오베의 삶은, 비록 그는 성가시다고 느끼긴 하지만 조금씩 할 일이 늘어난다.




살아갈 이유, 살다 보면 생기는 것


 살아야 할 이유는 생이 멈추지 않는 한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오베에게 이런 말이 위로가 되었을 리 없다. 그가 죽으려 하는 것은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죽고 싶어서다. 새로운 이유를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데 살다 보면 이유가 생길 거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베는 역시나 반복해서 죽음을 바라보지만 이웃들은 도무지 그를 내버려두질 않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베의 자살을 방해하던 사람들은 결국 소냐(오베의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그가 자연스레 생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도록 만든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살아 있는 한 살아갈 이유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이다. 더 이상 세상에서 할 일이 없었을 것 같았던 그였지만, 오베는 자신의 이웃들이 결핍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난날 삶의 경험이 그를 그토록 까칠한 노인으로 만들었지만 정직하고 따듯한 사람의 본성이 그에게 남아있었던 덕분일 것이다.


출처 - Daum 영화

 

 살기를 원치도 않았고, 새로운 이유를 얻기도 바라지 않았지만 오베는 결국 자신의 커다란 심장이 멈출 때까지 살아갔다. 자신의 오랜 친구를 지켜내고 손녀 같은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분명 잠시나마 기쁨과 행복을 되찾았을 것이다. 오베가 죽음을 결심하는 상황이 충분히 공감되었기에, 그리고 그의 생에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음을 보았기에 그가 다시 힘껏 남은 생을 살아내는 것을 보는 이들은 덩달아 함께 삶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보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생겼거든"




출처 - Daum 영화


 개인적으로 회상으로 등장할 뿐인 오베의 아내 소냐는 주인공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마음에 남는 캐릭터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그녀의 꿈마저 좌절되기를 반복할 때, 소냐가 휠체어에 앉아 담담히 뱉는 한마디의 울림은 상당히 진하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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