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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29. 2018

왜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나

Prologue. 꿈꾼 듯 일주일

 누구나 '언젠가는'이라는 로망으로 간직하고 있는 여행지가 한 곳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블라디보스토크나 러시아 여행에 오랜 꿈을 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킹크랩이나 곰 새우가 먹고 싶어서는 더욱이 아니다. 추천을 받은 것도, 관련 콘텐츠를 접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특별히 꼽을 하나의 이유는 없었다. 새로운 어느 곳에서든 즐거움, 혹은 즐겁지 않다면 가치 있는 무엇이라도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여행이라고 믿기에 '꼭 이것'을 외치며 여행지를 정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스베틀란스카야 거리


 다만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가 볼거리가 그리 많은 곳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곳에 일주일만 머무르다 오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피어오른 것은 확실했다. 시내가 작고 명소들이 모여 있어서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이상하게 더 끌렸다. 일상에 지치다 보니 자그마한 도시에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 멋대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걸까? 이 도시에 왔으면 여기는 꼭 가봐야 해, 라는 압박이 적을수록 마음 편히 쉬다 오기에 좋은 여행지가 되리라 생각했다.


 효율적인 일정을 짜서 관광명소들을 빠르게 돌며 사진을 남기는 여행이 아니라, 한 도시에 천천히 머무르며 잔잔히 스며드는 그런 여행을 원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바다를 접한 항구도시라는 점 또한 그런 여행 콘셉트에 더없이 알맞다고 느껴졌다.


 물론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뒤따랐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모아둔 돈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행을 품고 살다 보면 떠날 수 있는 타이밍이 보이기 마련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이 스멀스멀 머리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지 약 한 달만에 비행기에 올랐다. 9월의 연휴에 앞뒤로 시간을 내서 정확히 일주일을 확보했다.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확실하다면 경비는 어느 방법으로든 모을 수 있기 마련이며, 마침 멀지 않고 물가가 저렴한 편인 블라디보스토크의 일주일은 그리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은 애초에 예상했던 방향과는 꽤 다르게 흘러갔다. 절반 이상의 여정이 편안한 휴식과는 대척점에 놓였다.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씩을 걸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잖이 고생도 했다. 결코 가볼 곳이 적지도 않았거니와, 한 번의 방문으로 족하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드는 장소들은 또 어찌나 많던지! 나도 모르는 사이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온 블라디보스토크를 휘젓고 다녀서 여행 중의 어느 날은 내일은 진짜 여유롭게 도심에서 보내자, 라고 다짐하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내게 익숙한 하나의 여행 방식이었을 뿐, 짙은 푸른색의 바다를 가진 블라디보스토크는 잔잔히 쉬다 오기 좋은 여행지임에 틀림없는 곳이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금각만의 노을


 그렇게 홀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냈던 7일의 시간들은 무척 황홀했고 즐거웠으며, 어느 때는 외로웠고 동시에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여행이란 세상의 다양한 모습에 비추어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 했던가. 일주일간의 여로 위에서 만난 그 수많은 감정들 역시 다양한 '나'들에 다름 아니었다. 무엇보다 노을에 붉게 물드는 순간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던 블라디보스토크, 그곳에서 겪은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며 글과 함께 다시 한번 그곳으로 떠나고자 한다.


 이 또한 다시 한번 꿈같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블라디보스토크를 그려볼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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