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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Oct 04. 2018

여행도 쉬었다 가요

옥토퍼스 카페

 '수제버거 300p'


 땅끝에 있다는 등대까지 걸어가던 중에 발견했었던 당당한 입간판이 떠올랐다. 300루블이면 5,000원 남짓한 금액. 간단히 식사를 하며 노을이 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해안에서 카페까지 오르막이 꽤 가파르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한 번 걸어보기로 한다.



옥토퍼스 카페(Octopus Cafe)



 "문어 카페라..."


 해파리 같은 머리를 가진 선홍빛 문어 아이콘을 보자 한순간 의구심이 들기도 했으나, 해안가 언덕의 중턱이라는 그 위치 선정과 2층의 테라스가 사뭇 우아해 보이는 그 외관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맞이하는 직원은 딱히 없다. 들어가자마자 보였던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 본다. 두리번. 도움이 필요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지만 별다른 환영은 없었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괜히 민망해져서 다시 1층으로 걸음을 옮기고 비어있는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앉는다. 때마침 누가 봐도 직원처럼 차려입은 젊은 남자 한 명이 지나가서 대뜸 손을 들며 ‘익스큐즈 미-’하고 외쳤다. 그러자 그는 마치 이제야 발견해서 미안하다는 듯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탈 없이 수제 버거를 주문했다. 러시아처럼 자국어 외에는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검색으로도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가게에는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식당에서 형편없는 식사를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은 여행 중에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보다 직원도 메뉴판도 오로지 러시아어뿐이라면 애초에 주문에서 애를 먹거나 잘못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옥토퍼스 카페는 직원도 영어를 할 줄 알았고 메뉴판에도 영어가 적혀 있는, 꽤 글로벌한 식당이었다.

 

 잠시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가 있는 쪽에 서 있었다. 갑자기 2층에서 덩치가 대단히 큰, 대머리인 백인 남자가 내려오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러시아어로 빠르게 말들을 쏟아냈다. 한 손에 담배가 들려있는 걸 봐서는 불을 빌려달라거나, 어디가 흡연구역이냐고 묻는 듯했다. 라이터가 있었으면 빌려줬겠지만 그도 아니었기에 나는 두 차례 정도 직원이 아니라며, ‘암 낫 어 스텝’하고 외쳤다. 강한 인상의 남자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어 문장들을 전달했고, 좀 전의 남자 직원이 나타나니 그제야 나에게 미안하다며 세상 인자한 표정을 지어 보인 뒤 밖으로 나갔다. 폭풍 같았던 문어 카페의 찰나였다.

 



 새까만 빵이 위아래로 덮인 수제 햄버거는 맛이 굉장히 좋았다. 특히나 그 먹물을 먹은 햄버거빵의 쫄깃한 식감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다. 5천 원의 소비로 이런 수제버거를 먹을 수 있다니, 블라디보스토크의 물가 수준이 한국과 꽤 차이 나게 낮다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음식의 맛도 좋았지만 이 카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음악과 ‘뷰’의 조화였다. 옥토퍼스 카페에는 시종일관 대중가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음악들, 어떤 때는 가사도 없이 트럼펫만 울리는 그런 음악들만이 재생됐다. 그런데 때로는 ‘뚠뚠뚠-’ 하며 절로 어깨가 움직일 듯이 경쾌했고 때로는 몹시 잔잔해서 사람들을 감성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음악을 누가 고르는 것인지 카페 DJ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을 정도로 카페의 분위기가 훌륭했다. 특히나 앞쪽으로는 토카렙스키 만의 절경이 펼쳐지니 어찌 그 정취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마치 이 공간에 몰입하여 여행 중임을 잊는 듯했다. 마음에 평화가 깃드니 잠시 편안함을 만끽해본다.

 

 

 나는 홀린 듯 하루에 두 차례나 이놈의 문어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서 바라보던 경치와 들려오던 음악이 자꾸만 ‘여행이지만 잠깐만 쉬어가’,라며 발걸음을 붙잡는 까닭이었고, 그러면 나는 기어이 ‘맞아, 쉬어가야 할 때를 배우는 것도 여행이야.’라고 맞장구를 치고야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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