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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Oct 22. 2018

아르바트 거리의 아침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하기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루를 시작하기 좋은 곳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신이 없는 날들, 그때마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아르바트 거리였다. 맛있는 디저트 카페가 즐비해서 아메리카노 한 잔과 빵 두 조각의 브런치로 느긋한 아침을 열기에 더없이 좋으며, 아기자기한 유럽 양식 건축들이 늘어서 있어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작은 유럽이라 불리기도 한다. 음식, 건축, 풍경이 모두 조화로운 이곳, 쾌청한 하늘 아래 아르바트 거리의 분수 옆을 걷고 있으면 더없이 상쾌한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의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아르바트 거리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디저트를 빼놓을 순 없다. 여행 프로그램에 파이브 어클락과 우흐뜨블린이 소개된 것으로 안다. 두 가게를 모두 가봤는데 과연 붐비는 시간에는 현지인들보다도 한국인들이 많아서 웨이팅을 해야 할 만큼, 한인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었다(가게가 다소 좁기도 했다). 파이브 어클락은 카스텔라나 조칵케이크 등 상대적으로 클래식한 빵들을 파는 반면에 우흐뜨블린은 이름대로 블린(blin)이라는 러시아식 팬케이크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둘 다 맛은 괜찮았지만 내 입맛에는 담백한 빵을 먹을 수 있는 파이브 어클락의 압승이었다. 파이브 어클락은 무슨 빵이든 기본적으로 ‘저렴한데 맛있음’을 기본으로 했지만, 우흐뜨블린의 대표 메뉴 ‘초코바나나연유팬케이크’는 단맛이 강해서 맛이 꽤 좋았음에도 혼자 하나를 먹기에 조금 벅찼다. 어쩌면 결정적으로는, 우흐뜨블린에서 보르쉬를 시킨 것이 파이브 어클락에 승리를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 전통차인 보르쉬는 마시는 순간 건강해지는 듯한 밍밍함을 품고 있었다.

 

 앞의 두 디저트 가게와 달리 같은 아르바트 거리의 카페 ‘토르토니야’에는 사람 한 명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케이크의 맛은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카페로 올라가는 난간과 건물의 외관이 썩 고풍스러워서, 2층 현관에서 내려다보는 아르바트 거리의 풍경은 소소히 다른 정취가 있었다.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TV에 소개된 소수의 명소로 극심히 쏠리는 일이야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아르바트 거리에는 우흐뜨블린과 파이브 어클락 이외에도 가볼 만한 디저트 카페들이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파이브 어클락 (Five o`clock)
토르토니야 (Tortoniya)
우흐뜨블린(Uhtiblin) / 초코 바나나 연유 팬케이크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첫날 거리를 유랑하다 마주한 아르바트 거리의 첫인상은 아기자기한 모습이 너무나 예뻤지만 생각보다 자그마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소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아르바트 거리에 대한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아르바트 거리는 천천히 머물러볼수록 마음에 스며드는 곳이었다. 선선한 가을 아침에 언덕 아래로 보이는 바다, 그리고 시원하게 쏘아 올리는 분수와 함께 아르바트 거리의 모습을 한눈에 담으면 그림 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거리가 번화한 시간에 사람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들 만큼, 머무를수록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아르바트 거리였다.


 나는 그 매력에 빠져서 몇 번이나 아르바트 거리를 찾았고 이곳에서 시작하는 아침이면 언제나 거리 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분수 가까이에서 물이라도 한 방울 튀어 오르면, 거리를 뛰어다니며 분수대를 하나씩 손으로 집을 때마다 신이 나는 아이들처럼 나 역시 괜스레 마음이 들뜨곤 했다. 왠지 그런 아침에 서 있노라면, 오늘도 소중한 여행의 하루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기운이 아르바트의 하늘 위를 떠다니는 듯했다.

 

 

  내일은 게스트 하우스 넵튜니아에서 오전 아홉 시쯤 천천히 일어나 아르바트 거리의 파이브 어클락에서 브런치를 먹고 싶다. 그리곤 로딩 커피에서 해적이 그려진 테이크아웃 잔에 따듯한 커피를 한 잔 사온 다음 천천히 그 아침을 걸으면 좋겠다. 그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던, 몹시 따스했던 아르바트 거리의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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