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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Nov 04. 2018

여행이 끝나고

오늘을 온전히 사랑하기를

2016년 여름

여행이 끝난 것을 슬퍼하던 P에게



“여행이 끝났어.”


 짧은 한마디와 함께 너는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난 것은 오늘이 아닌데. 왜 일상의 하루를 다 보낸 다음에야 울음이 터졌을까. 아마 발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해가던, 행복함으로 충만했던 시간이 끝났음을 조금 늦게 실감한 것이겠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어제까지와는 다르게 전혀 새롭지 않은 하루가 다시 시작된 것을 느꼈겠지만, 바쁜 하루에 치여 지금까지 눈물 흘릴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여행과 일상의 괴리는 너무나 커서 그 격차를 한 순간에 건너 아무렇지 않게 삶으로 돌아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제대로 된 여행은 처음이라고 어디를 가든 일주일 내내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던 너였다. 이제 그 눈이 눈물에 반짝이고 있는 걸 보자니,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생생히 느껴졌다. 여행 경험이 조금 더 쌓이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 익숙해지면 그런 공허함에도 면역이 생길 거라고 말했지만, 과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봐도 크게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겠다. 애초에 그것은 익숙해지고 싶은 일이 아니었으니.


 몸은 어제 돌아왔지만 뒤에 남겨진 마음은 여행을 끝내기 위해 울면서 아직도 일상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한참을 울던 너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는데,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하겠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을 꺼냈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우리 함께 있는 지금이 전혀 즐겁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꺼내기 쉬운 말이 아니었겠다. 상대방은 너무나 멀쩡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나의 공허함을 공감시키기는 쉽지 않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나, 이 친구는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보다도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혹은 따분한 하루가 싫어서 달리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었거나.


 시간이 흘러 여행에 대한 글을 보여줬을 때, 너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훨씬 더 낮은 소리로, 조용하게. 그렇지만 기뻐하기도 했다.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은 삶의 행복을 충실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감정은 저장해두었다가 원할 때 꺼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쓴 글이 비록 눈물과 함께라도 너에게 다시 소중했던 감정들을 느끼게 할 수 있어서 나 역시 기뻤다. 글은 지나가버린 소중한 순간을 저장해두었다가, 삶에 지칠 때 그 추억을 잠시 꺼내어 위로받을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행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떠돌이가 되지 않는 이상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고 떠돌이가 된다면 일상이 여행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여행이 일상처럼 변하지는 않을까? 여행이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젠가는 돌아갈 삶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그리고 나도, 여행뿐만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하루에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이,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설렘이 있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는 날들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마저 내 것이라 여기고 아낄 수 있도록 나이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여행의 순간순간이 소중하듯 그저 지나가는 하루도 똑같이 돌아오지 않을 삶의 한 순간임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너와 내가 품고 살아가는 추억만큼이나 아름다울 순간들이 앞으로의 삶에 여전히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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