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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23. 2018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군함에 오르다

블라디보스토크 잠수함 박물관과 레드 페넌트 순시선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본부인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역사 속 러시아 해군 함선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제독 광장이라 불리는 ‘Admiral’skiy Skver’에 위치한 잠수함 박물관과 그곳에서 도로를 하나 건너면 있는 기념선 ‘Krasnyy Vympel(Red Pennant) 메모리얼’이 그것이다. 후자는 잠수함 박물관에 비해 유명하지 않지만 이곳 또한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어서, 실제로 바다 위에 떠있는 오래된 초계함에 올라가 볼 수 있다. 상당한 볼거리가 있다고 할 만한 곳은 아니지만, 금각만이 가까운 곳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한층 충만히 만들어 주는 장소들이다. 입장료 또한 저렴하다.



S-56 잠수함 박물관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10분, 한적한 해안가 근처의 한 광장에는 커다란 잠수함이 떡하니 놓여있다. 잠수함 꼭대기에는 C-56이라는 글씨가 당당하게 새겨져 있는데 구글 지도에는 대놓고 ‘S-56’으로 표시된다. 러시아에서 쓰는 키릴 문자의 C가 영어 알파벳의 S와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잠시나마 제목을 C-56이라 쓸 것인가, S-56이라 쓸 것인가 하는 값진 고민을 하게 만든 잠수함 박물관에서의 감상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런 데 와보고 싶었어!”



블라디보스토크 잠수함 박물관 외관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블라디보스토크의 잠수함 박물관을 찾았다. 6시가 되면 문을 닫는 곳이지만 규모가 큰 박물관이 아니므로 시간은 충분했다. 100루블(한화 약 1,700원)의 부담 없는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제 잠수함을 옮겨놓았음을 증명하듯 입구부터 두꺼운 철문이 기다리고 있다.


 C-56 잠수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되었는데, 당시 소련은 이 함정을 이용해 두 자릿수의 독일 군함을 침몰시켰다고 전해진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병사들의 훈련을 위해 사용되다가, 1975년에 승전 30주년을 기념하며 이곳으로 옮겨와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박물관 앞부분의 섹션에는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텍스트가 대부분 러시아어로만 되어 있다는 점은 외국인 여행자에게는 아쉬운 요소다. 그보다는 뒤쪽으로 갈수록 등장하는, 실제 잠수함의 환경을 보전해 놓은 형태의 전시가 더 인상적인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잠수함 박물관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전쟁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잠수함에서 이런 데 와보고 싶었다는 감상을 내놓자니 철없는 아이가 된 듯도 하지만, 그만큼 잠수함을 타볼 일이 없는 사람에겐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기관실의 수많은 원형 손잡이들과 계량기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 다른 칸에서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 침대를 보며 바다 깊은 곳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결코 편하진 않지만 틈틈이 원형 통로를 이용해 다음 구역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도 관람의 리얼리티를 더했다. 딱 잠수함 한 대만큼의 규모기에 볼 것이 많지는 않지만 오히려 짧은 여정으로 알차게 구경할 수 있는 그 심플한 구조가 장점인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잠수함 박물관 내부



태평양 함대의 순시선에 오르다


 잠수함 박물관 건너편의 해안에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 군함이 한 척 정박하고 있다. ‘Krasnyy Vympel’ 영어로 번역하면 레드 페넌트(Red Pennant), 간단히 붉은 깃발 정도로 해석하면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다. 잠수함 박물관, 영원의 불꽃 등과 상당히 가까움에도 아직 마땅히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장소인 듯 정식 명칭이라고 할 만한 번역을 찾을 수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금각만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해안가의 작은 공원에 위치해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온다면 꼭 한번쯤 방문해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이 기념선에 오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게 아니라 단지 바다를 따라 한적한 해안가 일대를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금각만에 정박한 군함 위로 올라가 볼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육지와 선박을 연결하는 다리를 냉큼 건넜다. 50루블(한화 약 8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나니 전세라도 낸 듯 순시선 위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레드 페넌트 순시선


 레드 페넌트 호는 1958년 7월 28일에 기념선으로 지정되어 이곳 블라디보스토크에 정박하게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실제로 오랫동안 태평양 함대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최근에 재건 과정을 거쳤다고 하는데 내가 방문한 시기에는 이미 완료된 듯 공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군함에 올라 출항을 준비하는 선원이라도 된 것처럼 배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블라디보스토크 레드 페넌트 순시선


 조타실이 있는 함교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바지선 같은 배 위의 또 다른 작은 배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개구쟁이 아이처럼 대포를 쏘는 시늉도 해본다. 맹렬한 대포의 아래에선 빛을 받은 바다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 배 가운데에는 철로 된 좁은 계단이 있는데 그곳을 오르면 선박 꼭대기 층의 작고 평평한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에 서면 금각만 위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새파란 하늘과 그보다도 짙은 푸른색의 바다 사이에서 잠시 여행 중의 휴식을 즐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자니 마치 물 위의 오두막집에서 오후를 보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블라디보스토크 레드 페넌트 순시선에서 보는 금각만 전경


 스베틀란 스카야 거리의 한 블록 아래, 레드 페넌트 순시선이 정박하고 있는 해안가 일대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임에도 확연히 인파가 드문 곳이라 바다와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서인지 여행객들보다도 데이트를 나온 현지인 커플들이 더 많이 보이기도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여행자들은 유독 아르바트 거리나 독수리 전망대 등 소수의 명소에 몰리는 정도가 심한 편이다. 이렇게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에 머무는 동안, 오후의 몇 시간이나마 시내에서 멀지 않은 이곳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오래된 잠수함과 순시선에 올라보는 색다른 경험은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한층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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