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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20. 2018

펠메니에 맥주 한 잔

블라디보스토크 로즈키 플로스키


블라디보스토크 로즈키 플로스키


 여행의 즐거움에 먹고 마시는 일이 빠질 순 없다. 고된 여정을 마친 블라디보스토크의 다섯 번째 밤, 아르바트 거리보다 한 골목 아래인 스베틀란 스카야(Svetlanskaya) 거리의 ‘로즈키 플로스키(Lozhki-Ploshki)’를 찾았다. 러시아식 만두인 펠메니(Pelmeni)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인데, 국내의 한 여행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조용한 밤거리의 지하에 위치한 가게로 들어가니, 한국인 여행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가게임을 증명하듯 한글 메뉴판이 내 앞에 놓였다.


로즈키 플로스키(Lozhki-Ploshki) 수제 펠메니 메뉴와 맥주


 펠메니는 한 입에 쏙 들어올 만큼 크기가 작으며 밀가루 피가 얇은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삶는 방식으로 조리되는 만두인데, 지역에 따라 여러 육수나 수프에 데우거나 혹은 튀겨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만두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전통 펠메니는 만두소로 다진 고기가 들어가지만 오늘날의 펠메니는 속을 어떤 재료로 채우느냐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로즈키 플로스키에도 무척 다양한 종류의 펠메니가 있어서 나는 메뉴판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가장 먼저 고른 ‘새우와 함께(WITH SHRIMP)’는 오늘의 판매량이 매진된 상태였다. 고심 끝에 무난해 보이는 오징어 펠메니와 로컬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베리안 펠메니, 그리고 ‘지굴려프스코예’라는 상당히 낯선 이름의 생맥주를 주문했다. 물론 러시아인 직원에게 지굴려프스코예! 라고 경상도 사투리처럼 말하진 않았다. 여행 중에는 대게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디스 원(this one)’이라고 주문하는 게 어설픈 현지 언어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고 정확했다.


로즈키 플로스키(Lozhki-Ploshki), 오징어 펠메니와 생맥주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커다란 생맥주 한 잔과 세모난 모양의 만두가 정갈하게 접시에 담겨 나왔다. 접시가 하나뿐이었기에 두 메뉴가 함께 담겨 나온 것인지 헷갈렸다. 펠메니 한 메뉴에 250루블(한화 약 4,200원)가량이어서 ‘조금 고급인 만둣집인가?’라고 생각하면 심각하게 부족한 양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펠메니를 집어먹어도 맛이 한 가지로 느껴졌다. 한입에 쏙 먹기 좋은 크기의 이 펠메니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는데, 새하얀 속을 보아선 아무래도 오징어 펠메니인 듯했다.


 반쯤 먹다가 긴가민가하면서 직원을 불러보니, 어쩐지 주문이 하나만 들어간 것이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혼자 온 손님이 만두를 두 접시나 시키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일까. 하지만 나는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고 맥주도 적지 않게 남아있었기에 아랑곳 않고 다시 시베리아 펠메니를 부탁했다. 다행히 오징어 펠메니의 맛이 무척 괜찮았으므로 직원의 작은 실수는 이 밤의 즐거움, 홀로 맥주를 마시는 블라디보스토크 밤의 흥취를 삭감하지 못했다.


로즈키 플로스키(Lozhki-Ploshki), 시베리아 펠메니


 안타깝게도 보다 로컬스러운 음식에 도전하고자 주문한 시베리아 펠메니는 입에 맞질 않았다. 다진 고기의 향이 무척 강한데 만두소가 다른 채소도 없이 오로지 그것뿐이라 먹을수록 빠르게 질렸다. 새우 메뉴가 남아있었다면 분명 오징어 펠메니와 함께 둘 다 성공적인 선택이 되었을 텐데! 차라리 송아지, 마늘, 우유로 만들었다는 할머니 펠메니를 주문했으면 어땠을까. ‘시베리아’라는 이름에 꽂혔던 몇 분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끝내 시베리아 펠메니의 맛은 궁금증으로 남았을 것이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맥주를 비우곤 계산대로 향했다.


 만두 두 접시, 추가한 소이 소스, 커다란 생맥주 한 잔까지 총 660루블(한화 약 11,000원). 당일치기 우수리스크 여행의 피로를 씻어낸 것치고 비싼 값은 아니었다. 또한 여행지의 가게에서 홀로 맥주를 마셨던 사소한 일은 기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테니. 오늘도 참 나쁘지 않은 여행의 밤을 흘려보냈구나. 홀로 마시는 맥주란 가히 외로움의 흥취를 즐기는 일이다! 기분 좋은 취기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의 밤거리를 걷는다.


블라디보스토크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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