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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Dec 24. 2018

꺼지지 않는 불을 피우는 광장

블라디보스토크 제독광장, 개선문과 영원의 불꽃


블라디보스토크 제독광장, 개선문과 영원의 불꽃


 몇 개의 유명 장소가 모여 있는 제독광장(Admiral'skiy Skver)에서도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은 블라디보스토크 개선문(니콜라이 황태자 개선문)이다. 마치 붉은 장화를 신은 듯한 네 개의 받침 기둥에서부터 반원의 아치를 지나 육각 뿔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분홍색, 백색, 회색, 금색이 섞여 있지만 촌스러운 느낌은 없다. 그 배경으로 새파란 하늘과 초록의 나뭇잎들까지 더해지면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울려 빛난다는 뜻의 오색찬란이라는 형용사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는 모습이다. 그 작고 아름다운 자태 덕분에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선문은 웨딩촬영지로도 손에 꼽히는 장소가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개선문(니콜라이 황태자 개선문)


 개선문(Triumphal Arch)은 전쟁에서 승리해서 돌아온 황제나 장군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우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표적으로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 1세가 당시 프랑스 군대가 거두었던 승리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을 명령한 것이다. 반면에 그 나폴레옹의 침공을 막아낸 것을 기념하는 승리의 개선문이 모스크바에도 있으니, 나폴레옹 이후 세계 각지에서 개선문 열풍이 불었던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런데 파리의 개선문보다 몇 배나 작은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선문은 어떤 위대한 업적을 박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Nikolai II)의 방문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그가 왕위를 계승하기 전에 여행했던 다른 러시아 몇몇 지역에서도 같은 이유로 개선문이 건립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선문이 처음 만들어진 때는 1891년인데 그때부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해온 것은 아니다. 1917년 2월 혁명과 함께 니콜라이 2세가 처형당한 뒤, 이어진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 파괴되었다가 2003년에야 복원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역사 유적의 풍파를 느끼기보다는 광장에 잘 녹아든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축물을 바라보는 것도 같다.


성 앤드류(안드레아) 소성당


 개선문을 지나 내려오면 작은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이 있다. 성 앤드류(St. Andrew) 소성당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원이다. 역시나 블라디보스토크스러운 고운 색감과 외관을 지닌 채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광장 한 곳에 서있다. 그리고 그 소성당 아래의 계단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영원의 불꽃(Eternal Flame)이다. 별 형태의 조각물 가운데서부터 불꽃은 조용히 피어오르고 앞에는 헌화의 흔적인 꽃들이 놓여있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글씨로 ‘1945’라는 조형물이 새겨져 있어서, 그 붉은 꽃들과 꺼지지 않는 불꽃이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것임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영원의 불꽃


 장난을 칠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과연 저 불꽃이 진짜인가, 하는 호기심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까이 손을 뻗어보기만 해도 열기가 진하게 느껴질 만큼 뜨거운 불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뿐만 아니라 러시아 각지에서 이곳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일 년 내내 꺼지지 않는 불을 피우고 있다. 근위병까지 서 있는 곳들도 있다고 하니 꽤나 수고스러운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조들의 넋을 기리는 도리를 다함과 동시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평화의 가치를 되새겨 보도록 만들 수 있다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지피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원의 불꽃은 타오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제독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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