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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an 06. 2019

금각교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높은 산, 그 위의 독수리 전망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높은 산, 그 위의 독수리 전망대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의 중반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느긋이 보내던 오후에 문득 블라디보스토크의 독수리 전망대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지 중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한 장소라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 번쯤은 가봐야지, 라고 생각만 하고 있던 곳이었다. 시내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 있어서 언제든 끌리는 순간에 즉흥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위치다. 유난히도 청량한 9월의 블라디보스토크 하늘에 가까워진다는 기분 좋은 느낌으로 클레버 하우스(Clover House)부터 시작되는 오르막을 천천히 걸어 올랐다.


독수리 전망대 가는 길


 독수리 전망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오를리노예 그레즈도(Orlinoye Gnezdo)산에 있다. 그 높이는 약 214m로 차량이 많은 대로변을 따라 20분은 오르막을 올라야 해서 택시를 타는 것도 방법이지만,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에도 금각만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므로 걸으며 구경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또 그 길에는 러시아 적백내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진 ‘세르게이 라조’의 동상이 있는 공원이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독수리 전망대


 그리 힘들지 않은 여정을 거쳐 독수리 전망대에 도착했다. 두 눈앞에 금각교를 중심으로 항구도시다운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의 전경이 펼쳐진다. 새파란 하늘과 바다 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들의 도시, 만(bay)을 끼고 있는 문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풍경이다. 난간 밖의 절벽으로 돌출된 ‘인생샷 포인트’에는 위험 경고가 붙어 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 장이라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까지 서 있다. 그 뒤편 중심부의 구조물에는 영원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자물쇠들이 줄줄이 매달려있는 모습도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중 필수 코스로 알려진 장소인 만큼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도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조금이나마 한적한 장소로 자리를 옮겨 잠시 눈앞의 풍경에 마음을 집중해본다. 200m가 조금 넘는 산 위의 전망대는 도시가 그리 가깝지도, 너무 아득하게 보이지도 않는 아주 적절한 거리에서 도심을 조망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온 뒤로 바다를 중심으로 한 멋진 풍경을 많이도 봐왔건만, 질리지도 앉는지 또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하늘이 푸른 한낮의 전경도 좋고, 노을이 지고 어둠이 오는 동안 그 색이 변해가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지켜보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한참 감상을 즐기다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금각교를 조금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그 위를 걷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내려오는 길에 나는 금각교로 통하는 길목에서 방향을 틀어 다리 쪽으로 최대한 걸어보았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다소 허튼짓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교량이 시작되는 입구에서 보행자 통로가 막혀 있었으며 지키는 공무원까지 있어서 안으로 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모르는 이가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만큼 엉뚱한 곳으로 여러 번 걸음을 옮기며 금각교를 서성였다. 그런 무용한 짓을 왜 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전망대의 인파 속에서 금각교를 멀리서 보기만 하다가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 보기를 시도한 것은 나름대로의 즐거운 여행 방법이었다. 그런 엉뚱한 시도들이야말로 예기치 못한 재미를 선사하는 법이다. 언젠가 어느 곳에서는 그런 허튼 시도가 통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여행만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라도.


금각교 가까이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마지막 밤에 다시 전망대를 찾았다. 금각교는 금빛을 뿜어냈다. 낮과 밤의 풍경이 모두 훌륭하다는 독수리 전망대에 대한 평은 진실이었다. 형형색색의 빛들이 화려하게 도심을 밝히고 금각만 위로 그 빛들이 아른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리운 얼굴들이 새까만 바다 위로 함께 떠오른다. 그리움과 동시에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짙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것은 홀로 여행을 할 때면 몇 번이고 겪게 되는 모순된 감정이었다.


독수리 전망대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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