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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an 12. 2019

일주일 정도는 괜찮아

생에 단 7일이라도 필요한 시간


생에 단 7일이라도 필요한 시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카페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나온 오후였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뜬금없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괜스레 감상에 젖지 말고 기념품이라도 구경하며 기분전환이나 해야겠다고 서두르게 걷다가, 갑작스레 드리운 그늘의 정체가 무엇인지 마주해보고자 발걸음을 돌렸다. 혼자 떠나온 시간에서만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솔직하게 만나봐야 했다. 개선문이 있는 공원과 금각만이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 거리를 천천히 걸어본다.


 마음이 뻥 뚫리는 바다와 시원한 바람 앞에서도 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역시나 외로움과 고독이다. 나는 결코 자주 외로움을 느끼는 편은 아니라고, 어디서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했었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일에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없었다. 어쩌면 고작 일주일이었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끊임없이 홀로여서였을까, 보고 싶은 얼굴과 함께 까닭 모를 슬픔이 잠시나마 밀려왔던 것은. 혼자 하는 여행은 분명히 자립심을 키워주지만 동시에 어디에서든 홀로 살아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 하나면 충분하다는 오만을 잠재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면을 두 눈에 담아도 계속해서 혼자였다면, 그 맛과 운치를 함께 나눌 이가 곁에 없었다면 결국엔 쓸쓸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벌써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냐면, 그것은 또 모르겠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블라디보스토크는 내게는 너무나 마음에 드는 도시다. 곧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일주일이지만 혼자였다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는 단 일주일이라도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다. 유이, 찬을 비롯한 이름 모를 여행자들을 몇 명 사귀었지만 나름의 벽을 허물지 않았던 것은 내가 걷고자 했던 길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여행 중에 만나는 인연으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떠나온 일주일이 아니었다.


 혼자인 시간과 여행이 좋다. 동시에 외로움을 느낀다. 이것은 모순일까? 그리운 마음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의 하모니는 또 어떤가. 그 모순들이 정의되지 않은 슬픔의 파도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독과 외로움, 아쉬움 같은 감정들이야말로 혼자인 여행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요소다. 홀로 걷는 여로에는 무슨 일이든 나의 힘으로 해볼 수 있겠다는 자립심을 키우는 시간, 그리고 타인의 필요성을 깨닫는 순간이 공존한다.


 그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잘 아는 시간이 되었으니 일주일이나마 홀로 떠나왔던 것은 참 괜찮은 일이었다. 얼마나 먼 곳인지, 혹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는 아마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원했던 적은 없지만 어느새 내 위로 한가득 쌓인 짐들을 내려놓고 어디로든 훌쩍 떠나는 시간, 그런 시간이 생에 단 7일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지도를 보며 걷는 일보다 택시를 잡는 것을 귀찮아하곤 했다. 탄탄한 계획보다는 즉흥적으로 움직이기를 좋아했다. 나는 혼자인 시간을 사랑하지만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쉽게 외로움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이 변했고 전보다 밝은 사람이 되었더라. 여행 직전에는 몇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일상을 떠나서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는 일들이 아마 내가 평생 그만두지 못할,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겠다. 한 걸음 떨어져 나와 나의 삶을 돌아보니 그래도 최근엔 기쁜 일들이 많았다. 진즉에 감사함을 느꼈어야 할 순간들을 금각만 앞에서 다시 떠올려본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내일이 오면 잠시나마 내려놓았던 짐들을 다시 들쳐 메고 익숙한 길을 꾸준히 걸어야 할 것이다. 나를 만날 수 있었던 일주일의 시간 동안 느꼈던 것들은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실 내일의 어떤 선물을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오늘들이 모여 삶의 어느 순간을 채우는 것만으로 여행은 제 몫을 다했다. 언제나 그 뒤에 남는 모든 것들은,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라도 여행의 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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